“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생전에 대한체육회,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가혹한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고 한다.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에서 비리를 신고할 경우 자기에게 모질고 가혹했던 감독 위에 군림한 선배, 허울뿐인 감독, 돌팔이 팀 닥터가 처벌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란 헛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목숨만 빼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최 선수가 신고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련하고 먹먹하다.
필자도 선수 시절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과 폭언에 시달린 경험이 많다. 고교 입학 동기가 16명이었는데 선배들의 폭력과 황당한 지시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 탈락한 친구가 9명, 졸업은 겨우 7명밖에 하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접은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 넘게 바뀔 시간이 흘렀지만 스포츠계는 여전히 폭력과 부당한 지시가 만연하고 더욱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번에 최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1차 책임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때리고 괴롭힌 선배, 감독, 팀 닥터일 것이다. 2차 책임자는 체육단체의 맏형 격인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일 것이다. 직무를 유기한 감독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최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 분명 사회적 타살이다. 특히 최 선수 죽음에 대해 대한체육회의 과오는 누구보다 크기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체육회는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 위상에 걸맞게 스포츠 시스템 혁신을 통해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첫째 스포츠 인권 강화 대책 추진 및 클린 스포츠 생태계 구축, 둘째 체육단체 감사 실시, 체육 특기자 제도 및 체육인 등록 관리체계 강화, 셋째 공정한 판정 문화 정착을 위한 상임·아마추어 심판 육성, 체육인 교육원 건립 및 스포츠 인재 종합교육체계 구축, 넷째, 2020 대한체육회 창립 100주년 및 한국체육 100주년 기념사업 전개, 다섯째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한 선수 진로 지원 내실화 및 체육인 일자리 창출 지원 노력, 체육인 복지 강화, 체육단체 운영 혁신방안 마련 및 추진 등을 내세웠다.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위해 수립한 정책 개발 및 제도 정비 노력만 놓고 보면 물 한 방울 새지 않을 정도로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제도를 정비해 놓는다 할지라도 고 최숙현 선수의 경우와 같은 사건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최근 유도 왕기춘 선수 성폭력 사건,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성폭력 사건, 프로야구 이택근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역도 사재혁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등은 체육인 전체를 욕보이는 행태다.
영화 ‘친구’ 대사를 빌리면 “많이 묵었다 아이가. 이젠 고마해라.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 국민은 짜증 나고 화가 난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대한체육회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대목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두 가지만 당부한다. 첫째 대한체육회는 스포츠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앞으론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라. 둘째 메달 100개를 따는 것보다 스포츠계에서 일어나는 고질적인 (성)폭력, 지도자 비리 그리고 금품수수 등을 일소하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해주길 진심으로 당부한다.
희생이 강요된 메달의 가치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국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결과 이상으로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정신과 가치는 진화하고 발전하는데 스포츠계만 고장난 물레방아처럼 서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송강영 동서대 체육학과 교수·체육인재육성재단 전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