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날씨 탓인지, 코로나19 탓인지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에 지쳐가던 최근 소설가 권여선의 단편집 ‘아직 멀었다는 말’을 만났다. 그 중 ‘전갱이의 맛’은 성대 낭종 수술로 묵언의 시간을 가졌던 한 남자가 발견한 어떤 언어를 담았다. 그가 찾은 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으로서 언어가 아닌 “그의 삶이, 그의 감정과 기억이 오롯이 담긴 말, 궁극적으로는 말 너머의 말”(244쪽)이다. 어쩌면 사람은 온 삶을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찾는 것이 아닐까.
어쩐지 내가 몸담은 부산의 독립영화 배급사 ‘씨네소파’라는 조직이 고민해온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무(無)였으므로 우리는 모조리 실험하며 새롭게 쌓아올렸다. 그때 사업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논의한 것은 노동체계였다. 창립멤버로서 우리는 노동자인 동시에 자기 노동에 대한 사용자였으므로, 그런 노-사의 ‘이중인격자’에게 맞는 언어를 찾고자 했다.
창업 초기라 안정된 수익을 보장할 수 없었지만, 급여체계는 중요한 문제였다. 상근근로자 없이 창립멤버끼리 일하던 초반에는 노동량과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활동비를 받았다. 그것이 서운함을 낳기도 하는 것 같아 한동안은 각자 노동시간을 체크해두었다가 수익이 생기면 시간 비율로 배분해보았다.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이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음을 다해 일한 사람끼리 돈을 뺏어 먹어야 하는 최악의 형태였다.
구성원 간 분배 외에 급여구조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당연한 명제였다. 인간은 모두 다른 조건(체급)과 환경(출발선)을 가지는데, 무조건 똑같은 것이 공정한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운 좋게 잡은 어떤 나뭇가지를 내가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동안 ‘나와 똑같이 일한’ 내 옆 동료는 월세에 잠식돼 간다. 그 모든 게 잔인한 늪지 같았다. 그런 논의를 토대로 우리만의 체계를 만들었다.
급여는 생활안정금, 건강유지금, 노동보상금으로 나뉜다. 주거 안정은 쉽게 말해 월세가 있는 팀원에게만 지원되는 돈이다. 건강 유지는 건강한 심신을 위한 것으로, 모든 팀원에게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간단한 운동계획 증빙이 필요한데, 금액이 많지 않아 상징성이 강하다. 이는 주거와 건강은 소비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노동 보상은 최저시급에 근거한 일반적인 법적 급여다.
노동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란 틀에 맞춰 노동하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았다. 노동을 시간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상 산업자본주의 때나 가능했던 것 아닌가. 기획이 주된 업무라 책상 앞에 있는 게 능사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나조차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됐다.
한편으로는 사람마다 노동 스타일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빠르게 일한 뒤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쉬기도 하며 여유롭게 일하다가 천천히 퇴근하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그런 다양성을 담기에 시간은 너무 경직된 기준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주간 목표를 구성원이 협의해 설정하고, 그것을 완수하게끔 스스로 일정을 짠다. 물론 주 40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중요한 건 출퇴근이 아니라 미션 완수다. 편하게는 ‘유연근무제’로 이해해도 좋다. 월~목요일 11시부터 16시까지 의무출근시간을 두고, 나머지 시간은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근무한다. ‘주4일제’로 곡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은 나인투식스(9시 출근-6시 퇴근)보다 더 어렵다.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을 알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기 노동의 주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도한 것이 잘 실현되고 있는지는 또 별개 문제지만, 하여간 세상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며 아등바등 살다 보면 요즘처럼 제풀에 지치는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전갱이의 맛’에서 그런 위로를 받는다.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향한,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241쪽)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