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청년의 소리] 자기만의 언어 /성송이

  •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  |   입력 : 2020-07-07 19:38:36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습한 날씨 탓인지, 코로나19 탓인지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에 지쳐가던 최근 소설가 권여선의 단편집 ‘아직 멀었다는 말’을 만났다. 그 중 ‘전갱이의 맛’은 성대 낭종 수술로 묵언의 시간을 가졌던 한 남자가 발견한 어떤 언어를 담았다. 그가 찾은 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으로서 언어가 아닌 “그의 삶이, 그의 감정과 기억이 오롯이 담긴 말, 궁극적으로는 말 너머의 말”(244쪽)이다. 어쩌면 사람은 온 삶을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찾는 것이 아닐까.

어쩐지 내가 몸담은 부산의 독립영화 배급사 ‘씨네소파’라는 조직이 고민해온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무(無)였으므로 우리는 모조리 실험하며 새롭게 쌓아올렸다. 그때 사업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논의한 것은 노동체계였다. 창립멤버로서 우리는 노동자인 동시에 자기 노동에 대한 사용자였으므로, 그런 노-사의 ‘이중인격자’에게 맞는 언어를 찾고자 했다.

창업 초기라 안정된 수익을 보장할 수 없었지만, 급여체계는 중요한 문제였다. 상근근로자 없이 창립멤버끼리 일하던 초반에는 노동량과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활동비를 받았다. 그것이 서운함을 낳기도 하는 것 같아 한동안은 각자 노동시간을 체크해두었다가 수익이 생기면 시간 비율로 배분해보았다.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이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음을 다해 일한 사람끼리 돈을 뺏어 먹어야 하는 최악의 형태였다.

구성원 간 분배 외에 급여구조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당연한 명제였다. 인간은 모두 다른 조건(체급)과 환경(출발선)을 가지는데, 무조건 똑같은 것이 공정한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운 좋게 잡은 어떤 나뭇가지를 내가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동안 ‘나와 똑같이 일한’ 내 옆 동료는 월세에 잠식돼 간다. 그 모든 게 잔인한 늪지 같았다. 그런 논의를 토대로 우리만의 체계를 만들었다.

급여는 생활안정금, 건강유지금, 노동보상금으로 나뉜다. 주거 안정은 쉽게 말해 월세가 있는 팀원에게만 지원되는 돈이다. 건강 유지는 건강한 심신을 위한 것으로, 모든 팀원에게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간단한 운동계획 증빙이 필요한데, 금액이 많지 않아 상징성이 강하다. 이는 주거와 건강은 소비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노동 보상은 최저시급에 근거한 일반적인 법적 급여다.

노동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란 틀에 맞춰 노동하는 것은 우리와 맞지 않았다. 노동을 시간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상 산업자본주의 때나 가능했던 것 아닌가. 기획이 주된 업무라 책상 앞에 있는 게 능사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나조차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됐다.

한편으로는 사람마다 노동 스타일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빠르게 일한 뒤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쉬기도 하며 여유롭게 일하다가 천천히 퇴근하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그런 다양성을 담기에 시간은 너무 경직된 기준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주간 목표를 구성원이 협의해 설정하고, 그것을 완수하게끔 스스로 일정을 짠다. 물론 주 40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중요한 건 출퇴근이 아니라 미션 완수다. 편하게는 ‘유연근무제’로 이해해도 좋다. 월~목요일 11시부터 16시까지 의무출근시간을 두고, 나머지 시간은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근무한다. ‘주4일제’로 곡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은 나인투식스(9시 출근-6시 퇴근)보다 더 어렵다.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을 알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기 노동의 주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도한 것이 잘 실현되고 있는지는 또 별개 문제지만, 하여간 세상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며 아등바등 살다 보면 요즘처럼 제풀에 지치는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전갱이의 맛’에서 그런 위로를 받는다.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향한,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241쪽)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미 애리조나서 60년 만의 민주당 주지사 당선, 상하원까지 다 장악
  2. 2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3. 3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4. 4[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5. 5[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6. 6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8. 8[속보] 도로 온수관 파열로 생긴 구멍에 행인 빠져…전신 60% 화상
  9. 9[속보] 만천하스카이워크 집라인 운행 중 멈춰…승객 30분간 공중에 매달려 있다 구조
  10. 10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3. 3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4. 4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5. 5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8. 8[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2. 2[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3. 3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4. 4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5. 5‘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8. 8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9. 9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10. 10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1. 1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2. 2[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3. 3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4. 4[속보] 도로 온수관 파열로 생긴 구멍에 행인 빠져…전신 60% 화상
  5. 5[속보] 만천하스카이워크 집라인 운행 중 멈춰…승객 30분간 공중에 매달려 있다 구조
  6. 6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7. 7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8. 8'세브란스병원 흉기난동' 50대 여성 구속심사
  9. 9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10. 10‘은평 스토킹 살인’ 60대 남성 구속심사…혐의 대체로 인정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