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소아외과 교수님한테도 전화드렸는데요, 환자 상태가 너무 나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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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당직을 서고 있는 밤에 레지던트 선생이 급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12세 여자아이인데, 외부 병원에서 벌써 심폐소생술을 두 번이나 한 상태구요. 지금 소아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모든 종류의 강심제는 다 쓰고 있는데, 혈압은 그래도 낮아요. 그런데, 소아중환자실의 교수님 말씀으로는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 같다고 하셔서, 소아외과 교수님께서 오시는 동안에 교수님께서 좀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아 중환자실에 가보니, 또래에 비해 통통한 아이가 누워있다.
“이틀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오늘 동네 병원 가는 길에 갑자기 쓰러졌대요.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두 차례에 걸쳐 한 상태구요. 현재 혈액검사 상 췌장 수치가 정상치의 50배 가까이 올라가 있네요.”
소아중환자실 교수님이 걱정스럽게 이야기한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 같은데, 초음파라도 볼까요?”
“교수님 보시기에 배가 불러온다면, 굳이 초음파까지 볼 것 없이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수술방으로 가죠. 그런데, 뇌손상은 없을까요?”
“아직 동공반사가 있어요. 근이완제 쓰기 전까지만 해도 자가 호흡도 있었구요.”
환자의 부모를 만났다.
“당장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배속을 열어봐야 알 것 같지만, 범발성(어떤 병의 증상이 특정 부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일어나는 성질) 복막염이나 괴사성 췌장염일 것 같아요.”
부모는 울면서 대답한다.
“우리 딸. 꼭 좀 살려주세요.”
여기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마침 소아외과 교수가 병원에 도착해서 같이 수술방에 들어갔다.
췌장 전체가 검게 변해 있지만, 만져보니 췌장 조직자체는 탄력이 있는 상태이다.
환자 혈압이 너무 낮아서, 이 상태에서 췌장을 떼는 건 환자가 수술을 못 견딜 것 같고, 배액관만 넣고 나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굵은 배액관을 두 개 만들어 췌장 주위에 넣고, 배를 서둘러 닫은 뒤 다시 소아중환자실로 나왔다. 수술 후 강심제 양도 줄었고, 수술 후 시행한 피검사 수치도 수술 전보다는 호전 추세이다. 거의 밤을 새 이제 새벽이 밝아오지만, 결과가 좋을 것 같아 기분은 좋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췌장 수치는 좋아졌으나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급성간부전에서 시행할 수 있는 혈장교환술까지 했다. 우리 딸처럼 멀쩡했던 한 어린아이가 죽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다.
다음 날 오후에 다시 전화가 울린다.
“동공이 이미 열렸어요.” 소아 중환자실 교수님이 환자의 상태를 전해준다. ‘아! 이미 뇌사상태구나.’ 아이는 다음 날 아침 사망했다.
얼마 전 종영한 TV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 소아외과 교수가 간이 찢어진 아이를 수술 뒤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서 퇴원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극적으로 환자를 살려도, 차마 살리지 못했던 환자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기뻐도 그렇게 기쁘지 못하는 것이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가 아닐까?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외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