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국의 ‘행복한 책읽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내가 소개한 책은 1989년에 영화로 나온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물어왔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라는 구절에 마음이 갑니다. 아파트 평수 늘리고 값비싼 차 굴리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들에게 인생의 목적은 ‘소유’가 아니라 ‘감동’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 선행학습 하고 있을 때 독일의 아이들은 감동 받으러 베를린 필의 연주회에 갑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예술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6살 손녀가 시골 내 고향집에 다녀와서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몰입해서 그린 꽃들과 기와집, 담벼락 그리고 과감한 색깔은 초현실주의 화가 샤갈을 연상케 하였다. 피카소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창의성을 유지시키는 것이 문제다.” 손녀는 특별한 예술적 감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기존 틀을 깨는 예술가로 태어난 것이다.
정말 아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 하루 종일 노래 부르고 춤추고 크레파스로 벽과 방바닥은 물론 냉장고 문 어디에든 그림을 그려댄다. 그들의 소꿉놀이는 연극이다. 병원 놀이, 엄마 아빠 놀이에서 어떠한 역할도 소화해내는 명배우들이다. 어떤 시점이 되면 거짓말을 한다. 스토리텔링의 시작이다. 슈퍼에 갔다가 왜 늦었느냐고 물으니 오다가 뽀로로를 만났다고 한다. 감동이다. 어린 시절 나는 외할머니의 감탄사 때문에 계속 뻥을 쳤다. 외할머니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이것은 내 창의성과 상상력의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예술가의 재능을 점차 잃어간다. ‘우리 아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변하지 않는 교육의 종점 때문에 예술은 뒤로 밀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규격화된 스펙을 좇아가다 보니 교통 체증에 막혀있는 자동차처럼 꼼짝없이 똑같이 가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다르고 똑같이 다른데!
세상과 현실을 다양하고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인 감각은 무디어져 예술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세월이 흐를수록 ‘지식과 답’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하지만 예술이 국력이 되는 이 시대에 감성의 공(空)터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애들아, 예술 먹자”고 외쳐야 되지 않을까?
교육 현장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오페라 ‘아이다’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비싼 입장료 문제로 고민하다가 문화회관의 배려로 입장료 5000원으로 최종 리허설을 관람하였다. 난생처음 본 오페라, “우리 학교는 오페라도 보러 갔다”는 자랑으로 한동안 떠들썩하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 충만하였다. 좋은 시절 도래하여 부산이 시끌벅적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예술을 찾아주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예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네 공원에서 노을빛을 받으며 쪼그려 앉아 꽃 그림을 그리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인간이란 존재의 경이로움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름과 따뜻함, 모순된 조화와 계산되지 않은 욕망 같은 것들을….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의 예술가이다. 하루에 작은 틈을 만들어 좋아하는 놀이를 해보자. ‘쉘 위 댄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춤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 앉아 짧은 시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잘 쓰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이 온다 / 늦었지만 특별한 입학 // 책상도 닦고 물병도 준비하여 / 내일을 기다린다 // 미루었던 등교/ 그래서 더 신나는…// 벌써 여름 / 빨간 장미도 준비해야겠다’.
코로나로 인한 미증유(未曾有)의 사태 속에서 N고등학교 K교장선생님이 ‘신입생’이라는 시를 쓰셨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切切)하다. 교장선생님의 아름다운 몸짓으로 아이들의 가슴에 벅찬 순정(純情)이 넘쳐나는 게 눈에 선하다.
조갑룡 교육인·전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