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가지, 깻잎, 상추, 고추, 오이, 호박, 부추, 둥굴레, 대추나무, 자두나무, 보리수나무, 장미나무, 뽕나무, 페퍼민트, 라벤더, 로즈마리…. 우리 집 옥상 농부 곰용 씨가 키우는 식물이다. 밖으로 다니며 활동하길 좋아하는 그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외부활동용 에너지를 옥상 텃밭 가꾸기에 쓰고 있다.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해충을 박멸하며 지지대를 보수한다. 보리수나무 잎에 붙은 진딧물을 하나하나 잡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곰이 떠오르는데, 언젠가 우스갯소리처럼 들었던 ‘자가 격리의 선구자, 웅녀(곰)의 후손은 대한민국인’을 실감했다.
어쨌거나 그는 식물을 잘 돌봤고 식물은 무럭무럭 자라 실한 열매를 내보였다. 쫀득쫀득한 찰 토마토의 식감에, 절굿공이 같은 오이의 크기에, 매번 놀라면서 맛나게 먹고 있다. 곰용 씨의 공간이 주는 즐거움은 꽤나 커서 누군가 ‘여름의 한가운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는 ‘곰용 씨의 옥상이요!’하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비를 맞은 잎은 무성해지고, 햇볕을 쬔 초록은 짙어지고, 그늘막 드리운 나무 평상에 누워 뒷산을 보면 바람 만난 나무들이 반짝반짝 손 흔들고, 하늘엔 구름마저 뭉게뭉게 자라니까, 이곳은 여름.
그런데 간혹 곰용 씨가 심지 않은 것들이 자라기도 한다. 배추, 감자, 채송화, 무궁화, 포도, 수박, 등등등. 허락도 구하지 않고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 슬그머니 뿌리를 내리는 그것들이 신기해 한참 들여다봤다. 자리 잡은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굼벵이, 애벌레, 벌과 나비, 그리고… 고양이들까지. 그것들은 식물을 갉아 먹고 즙을 빨고 알을 낳고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이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나는 평상에 누워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곰용 씨를 시기하는 다른 곰의 후손이 몰래 와서 둘러보고 가다가 문제 씨앗을 한 두 알 심어놓고 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갈등을 겪는지도 모른다. 딴 건 몰라도 저 고양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저렇게 귀엽고 예쁜 것들이 어떻게 이 세상 짐승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엄청난 사고를 치고 다닐 수가 있겠어?
길고양이 ‘옥상댁’의 새끼였던 고양이 5마리(금동, 은동, 동동, 짜장, 소닉)는 곰용 씨 옥상을 자신들 집이라고 여기고 떠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매일 천하제일무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어제 대회가 제54268회였고 대회 결과 나리 화분이 엎어졌다. 곰용 씨와 나는 ‘내 고양이인 듯 내 고양이 아닌 내 고양이 같은’ 그것들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그러자 고양이들은 우리 다리에 얼굴을 부비더니 한 지붕 아래 같이 잠들고 같이 밥 먹길 원했다.
식구가 되었지만 고양이는 고양이인지라 사냥에 대한 본능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부터 ‘고양이의 보은’이 시작됐다. 멀리서부터 한 마리가 우엥, 우엥, 울면서 우리를 찾으면 십중팔구 선물을 가져왔단 뜻이다. 그때마다 새, 두더지, 들쥐, 도마뱀, 청개구리, 지네, 여치, 풍뎅이 등이 집으로 배달됐다. 우리는 선물에 대한 감동은커녕 사냥감이 아직 살아있을 때 구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발을 동동 굴렀다.
금동이, 은동이, 동동이가 무언가를 물고 오면 짜장이 쏘닉이가 가지고 논다. 그것을 빼앗기 위해 우리 부부가 쫓아간다. 웃기고도 슬픈 술래잡기 시간이다. 녀석들이 가장 많이 잡아 오는 것은 곤충과 도마뱀, 청개구리다. 곰용 씨와 나는 몸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난 청개구리를 붙들고 뒷산에 자주 올랐다. 이렇게 살려서 보내면 마음이 편한데 잡혀 온 동물 대부분은 죽었다. 곰용 씨는 그것들을 밭 한편에 묻어줬다. 그때마다 나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중얼거렸다. 죽은 동물이 묻힌 밭의 식물은 유난히 잘 자란다. 그걸 먹을 때마다 나는 ‘고맙다, 고맙다’ 중얼거렸다.
곰용 씨의 여름 옥상은 이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에서 유지된다. 성실한 곰의 후손 곰용 씨는 여름을 가꾸고 게으른 곰의 후손인 나는 평상에 누워 뻐꾸기 노랫소리를 듣는다. 곰용 씨 옥상에는 여름이 자라고 있다. 매일 미안하고 매일 고맙다.
이정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