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할 수 없는 것은?
①소설 창작 ②작곡 ③ 그림그리기 ④ 프로야구 득점장면 편집 ⑤ 기사쓰기 ⑤ 신입사원 채용면접 ⑥ 은행 대출 심사 및 보험 판정 ⑦ 변호사 또는 의사 업무 ⑧ 회계 및 회의록 정리 ⑨ 학원강사.
짐작했겠지만 모두 현재 인공지능이 하고 있는 일들이다. AI의 그림은 경매에서 최고 5억 원까지 거래가 되었고 작곡한 음악들도 음원으로 발표가 되고 있다. 프로야구 득점 장면도 네이버에서 시청가능하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방송사 노동조합은 경영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7월 25일 하루 방송사 광고 매출이 1억4000만 원이다. 임직원 1700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여섯 살 이보람 양의 유튜브 방송과 광고 매출이 비슷해졌다”는 표현을 썼다. 콘텐츠 면에서는 비교대상도 아닌 1인 유튜브 방송에 대한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불만과 불안이 배어 있다. 그러나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르다. 방송은 방송끼리, 신문은 신문끼리, 포털은 포털끼리, 게임은 게임끼리 경쟁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시간을 나누어 쓰고 있을 뿐이다.
한국인의 시간 시장에서의 확실한 승자는 단연 유튜브이다. 1인 평균으로 한 달에 23시간 11분을 유튜브 콘텐츠시청에 쓰고 있다. 유튜브는 16년전만 해도 카카오톡과 네이버에 이어 3위였지만 지금은 훨씬 앞서 있다. 이 칼럼이 인쇄되어 있는 종이신문의 경우 시간시장에서는 하루 4.2분, 한 달로는 2시간 6분 이용된다.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톡이 어떻게 미디어로 분류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이제 없다.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 기반으로 콘텐츠를 보여주면서 시간과 광고이익을 휩쓸어간다. 중국 바이트댄스는 ‘틱톡’으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유니콘 기업이다. 2012년 ‘오늘의 헤드라인’이란 뜻인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로 사업을 시작했다. 단 한 명의 기자도, 편집자도 없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이용자의 뉴스 구독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뉴스를 추천한다. 그 결과 하루 7000만 명의 이용자들은 자기만을 위한 뉴스 미디어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광고인의 밤’ 행사에서 대상을 받은 업체는 광고제작이나 기획사가 아닌 ‘빅데이터 솔루션’ 기업이었다. 하루 15억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의뢰기업의 비즈니스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회사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쇼핑 등 온라인 검색을 하면 작은 광고창이 뜬다. AI가 클릭 확률이 가장 높은 서비스와 제품을 내보내고 클릭에서 구매, 결제까지 이루어져야 광고비를 받는 광고회사도 있다. 광고효과 측정도 어려운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대응할 수 있을까? 이렇게 데이터는 미디어세상을 바꿔나간다. 넷플릭스도 그렇고 음원시장의 스포티파이, 무크의 선두주자 코세라 등이 그렇다.
지금의 교실은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시대에 부응해 제도화된 것이다. 당시에는 관찰과 분류, 자동화, 전문화를 통한 세분화가 시대적 흐름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사회는 융합의 시대이다. 콘텐츠 이용의 대가로 시간을 지불하는 소비자는 뉴스와 예능, 유튜브 움짤, 광고, SNS 메시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교실과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뿐이다. 박막례 할머니와 대도서관 등이 모인 다이아티비(MCN)의 정기 구독자는 3억 명이 넘는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경영기반의 싱가포르 공영방송 미디어코프의 매출은 한국 지상파 3사 전체보다 3배나 많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500만 명으로 한국의 1/10수준인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대학에서는 방송이나 신문 같은 레거시 미디어 이야기만 한다. 콘텐츠기획이나 제작을 AI, 빅데이터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는 다루지 않는다. 이미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AI를 이용해 자신의 손글씨를 나만의 글씨체로 만들고, 내가 만든 영상에 AI로 자막을 넣고, AI음성으로 더빙을 입히고, AI가 작곡·연주한 음악을 BGM으로 깔아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든다.
강의실에서는 소비자에 대한 이해나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교육도 잘 보이지 않는다. 종이신문들도 인터넷판에서는 정적인 사진 대신 동영상을 이용하면 훨씬 실감나는 기사를 만들 수 있다. 하이퍼링크를 통해 입체적인 전달도 가능하다.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은행 1위는 카카오뱅크이다. 카카오뱅크는 전통적인 은행이 아니라 직원의 41%가 개발자인 ICT회사이다.
거대한 빙하를 녹이는 것은 표면의 작은 균열로 시작된다. 살짝 팬 그곳에 낮 동안 녹은 물이 고인다. 고인 물은 밤이 되면 얼어붙어 부피가 팽창하고 균열을 더욱 크게 만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거대한 빙하는 무너져 내린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진실의 시간(monents of truth)’이 빠르게 오고 있다.
김석환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