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고미술품 감정 TV 프로그램이 발칵 뒤집혔다. 문헌으로만 존재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하피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 중일 때 부인이 애정을 다짐하며 결혼식에 입은 다홍치마를 보냈는데 그걸 잘라 책으로 만든 게 노을빛 치마라는 뜻의 하피첩이다. 자손들이 분실했다가 200여년이 지나 폐지 줍는 할머니의 리어카에서 발견됐다. 가치 있는 문화재나 유적이 뜻밖의 계기로 빛을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서양 최초의 대학이 설립될 정도로 유서 깊은 고장이자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도 꼽힌다. 도시를 재개발하면서 역사와의 공존을 택했기 때문이다. 살라보르사라는 시립도서관이 정점에 있다. 이 도서관의 1층 바닥은 일부가 강화유리다. 건물 밑에 깔려있는 3000년전 고대 유적을 보전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유리를 통해 기원전 7세기 에트루리아부터 로마까지 성층화된 문명을 감상할 수 있다. 볼로냐의 모토가 ‘정신을 허물 수는 없다’이다.
“동래구는 팠다 하면 유물입니다.” 부산 동래구청 문화공보과에서 자주 듣는 얘기다. 동래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한 가야 삼국 고려 조선시대까지 유적과 유물이 산재해있다. 부산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보면 부산 전역에 1342개(2013년 기준)의 유적지가 있는데 외곽인 기장(574곳)과 강서(138곳)에 제일 많지만 도심지로는 동래(107곳)가 최다이다. 옛 동해남부선 공사 인부들이 낙민동 땅 속에서 찾아낸 동래 패총, 도시철도 수안역 공사 도중 드러난 동래읍성 해자는 유적으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극적인 발견 경위로도 유명하다. 몇년전 온천2구역 재개발 때는 청동기 유적이 나왔다. 동래구청 신청사 공사도 예외가 아니다. 복천동 예정부지에서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거 쏟아졌다. 예상은 했지만 발굴 범위와 비용 때문에 구청측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국가 역사가 300년이 채 안되는 호주의 공립박물관에는 선조들이 이민올 때 신었던 신발을 전시해뒀다. 신라시대 금동신발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낡은 헝겊신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역사라며 끔찍이 아낀다. 고고학계의 태두였던 고 김원룡 박사는 백제 무령왕릉 발굴을 최대의 발견이었지만 최악의 발굴이었다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발굴이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조상과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동래구 신청사 건립 계획에도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