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음에 서울 올라가면 찾아뵙겠다”고 통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난 25일 믿기지 않는 부음을 접했습니다. 26일 빈소에서 “이명 현상이 있으셨지만, 잘 관리해오셨던 선생님께서 산책 중에 운명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으니 더욱 애통합니다. 올해 일흔넷이신데….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저한테는 ‘교수님’이 더 익숙한 선생님께서는 영남대 교수 시절이던 1991년 11월 개발지상주의의 척박한 이 땅에 생태 전환의 지혜를 담은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해 30년을 한결같이 해오셨죠. 1990년대 초반 기자였던 저는 우연히 ‘녹색평론’ 독자가 됐고, 그 뒤 환경 담당을 하면서 부산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전교조·한살림 초청으로 강연 오신 선생님을 틈틈이 뵙고 지면에 소개하곤 했지요. 특히 1994년 국제신문이 언론사 최초로 환경과학부를 만들고 ‘푸른 신문’을 표방하며 ‘녹색소비자’ 시리즈, ‘3환 운동’ 캠페인을 벌일 수 있었던 근저에 ‘녹색평론’이 있었답니다. 저는 ‘녹평’의 평생독자가 되면서 자연스레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시민단체 강연을 취재하면서 뵌 선생님은 처음엔 좀 까칠하고 좀은 쑥스러워 하시는 모습이셨지만, 말씀하실 때는 우리 시대와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죽비를 치셨습니다. 선생님 강연엔 늘 ‘정곡을 찌르는 불편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이었지요. 선생님만큼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는 분이 없었으니까요.
2004년 부산의 한 강연 뒤풀이에선 이런 속내도 털어놓으셨죠. 세계 지성을 모셔서 해오던 인문생태학 대강좌에 대한 당시 대학 수뇌부의 몰이해와 비협조에 일갈하신 뒤, 교수직을 그만두고 ‘녹색평론’ 발행에 전념하시기로 결심했다고 말이죠. 그 허탈함과 결기가 동시에 느껴지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함께 가난을 나누며 즐겁게 살자며 ‘공생공락(共生共樂)’ 말씀을 자주 하셨죠. 밤이 늦어 주무시고 가시라고 강권해도 잠은 집에 가서 자야 한다며 손사래 하시던 선생님은 그만큼 가족 생각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전 모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제작팀이 녹색평론사가 출판한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선정됐으니 미리 대량 인쇄에 들어가라고 요청했는데 이를 거절하셨지요.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아이들에게서 책을 골라 읽는 재미를 빼앗으면 되는가?” 하신 저자의 말씀을 듣고는 수십만 권이 팔릴 좋은 기회를 정중히 사절하신 선생님. 우리 시대에도 이런 멋진 어른들이 계신다는 게 참으로 마음 든든했습니다.
지난 5·6월호 ‘녹색평론’에 선생님의 발간사 ‘코로나 환란, 공생의 윤리’를 다시 보니 “역병의 창궐이라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흥망이 결정된다”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고 말씀하셨지요.
선생님 목소리를 마지막 들은 게 지난 7일이네요. ‘녹색평론’ 7·8월호(제173호)에 제 원고를 보내고 전화를 드리니 “농업문제를 빠트릴 뻔했는데, 덕분에 균형을 갖추게 돼 고맙소. 농민기본소득을 강조해주신 김에, 이 문제에 더 천착해주셨으면 해요”라는 말씀이 저한테는 유언 아닌 유언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기본소득제, 특히 농민기본소득을 선생님께서는 10여 년 전부터 누누이 강조하셨지요. ‘녹평’은 대안교육, 대안의료, 지역자치, 자급자족, 불평등·차별 해소 등 생태평화를 이뤄낼 ‘대안문명의 공론장’이었습니다.
선생님, 26일 상가에서 함께 한 많은 분이 ‘녹평’이 우리 시대 전 국민 애독서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일에 조금씩 마음을 보태겠다는 말을 나눴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민 제자들’이 뜻과 마음을 모아나갈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 선생님의 부재로 참으로 막막하고 황망합니다. 선생님의 그 생태·생명의 불꽃은 이어질 것입니다. 선생님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서, 소탈하신 웃음과 따스한 마음 씀을 제 마음에 담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이제 이 세상일은 잊어버리시고 훨훨 우주를 여행하고 계십시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