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1950년 7월 4일 전, 피란길 수원역이 마지막이었다. 가두징병요원들에 끌려간 아버지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 병적기록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겨우 확인했지만 생사는 모른다. 남편의 생존을 믿고 기다리던 어머니는 10여 년 전 그리움이 만든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의 유해발굴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한 70대 여성의 기구한 사연이다. 국방부가 밝힌 국군 전사자 13만7899명 중 시신을 못 찾은 이가 12만2649명(88.9%)에 달한다. 그 유족들은 지금도 전쟁의 악몽에 허덕이고 있다.
이뿐인가. 북한군과 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국군을 합치면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훨씬 많다. 6·25전쟁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그 인원을 8만2318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교환을 통해 남쪽으로 귀환한 이는 8343명에 불과하다. 북한은 “남은 포로는 모두 전향했다”고 하나, 1994년 이후 조창호 소위를 비롯한 80명의 국군포로가 탈북해 남한에 옴으로써 거짓임이 드러났다. 남한이 북한군 종군기자 출신의 비전향자 리인모를 30여 년 간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가 1993년에야 송환한 것처럼 국군포로의 다수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
전쟁은 탈한반도를 야기했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바다, 그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 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작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포로 석방 때 남북이 아닌 중립국 인도로 가다 바다(푸른 광장)에 투신해 목숨을 끊는다. 실제 당시 국군·북한군 포로 76명이 중립국행을 택했다. 남북 모두 자유롭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북한이 남한을 적대시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공고화했듯이, 남한에도 반북 국가보안법이 엄존한다. 소설 속 이명준의 남북을 넘나드는 사상의 자유 추구는 현재도 여전히 불법이다. 이런 현실에선 이명준이 2020년 한반도에 환생한다면, 또다시 중립국행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이 이념의 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