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주인공 만섭(송강호)과 상구아빠(고창석)가 기사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밥을 먹는다. 다른 기사가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외친다. “이모 여기 아무거나. 빨리되는 거.” 택시기사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느긋하게 식사할 여유가 없다. 기사식당에서는 무엇을 주문하건 3분 안에 음식이 나온다. 어지간한 패스트푸드점 뺨치는 속도. 식사 시간도 평균 15분을 넘지 않았다. 영화는 단 한 줄 대사로 당시 택시기사의 신산한 삶을 압축했다.
 |
| 필자의 단골 기사식당 짜장밥. |
서울 시내에 기사식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다. 1974년 영업용 택시 숫자가 이미 1만2000대를 넘었다. 초기에는 ‘운전사식당’으로 불리다 1980년대 들어 기사식당이란 명칭을 썼다. 손님 한 명에 차가 한 대라 주차공간이 필수였다. 기사식당 입지가 특화된 건 이 때문이다.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도심 외곽이나 변두리에 터를 잡았다. 승차 거부가 빈번하던 시절 “교대하러 가는 중”이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쓴 핑계가 “밥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기사식당은 단순히 밥만 먹는 공간이 아니었다. 택시기사들은 밥을 먹는 동안 영업에 필요한 잡무를 해결했다. ‘원스톱 서비스’ 개념이 가장 먼저 도입됐다. 기사식당 주변으로 자동차 부품 판매점, 카센터, 구멍가게 등이 들어서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식당마다 3, 4명 인력을 두고 시중 가격보다 절반 이하로 세차 서비스를 제공했다. 잔돈 교환 역시 기사식당의 주된 서비스였다. 후식으로 껌과 믹스커피까지 제공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서비스를 능가하는 기사식당의 첫 번째 경쟁력은 바로 음식의 맛과 양. 택시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미각이 예민해진다. 하루 종일 운전만 하는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하루 한 번 챙겨 먹는 끼니. 그들 사이 맛집 정보 교류는 요즘 SNS를 능가할 정도로 빨랐다. 지리에 훤하고 이동수단이 있으니 어느 구석에 있건 찾아가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사식당 최고 인기 메뉴는 제육볶음. 그 외에 1970년대 말 기사식당 인기 메뉴는 잡탕, 설렁탕, 쇠고기볶음, 낙지볶음, 암소갈비, 삼계탕, 돈까스 순이다. 심지어 민물장어 덮밥으로 소문난 기사식당도 있다. 보통 기사식당은 열댓 가지 넘는 메뉴를 갖추고 시작하지만 특정 음식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것이 곧 대표 메뉴로 굳어졌다.
택시는 늘었지만, 도심이 확장되고 주차단속이 강화되고 민원이 증가하면서 기사식당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최근엔 기사식당의 주된 고객도 변했다. 택시기사뿐 아니라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모든 이의 장소가 되었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택시기사들에게 제공하던 ‘원스톱 서비스’를 포기하는 대신 값싸고 푸짐하면서 심지어 맛있는 음식을 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사식당은 우리 현대사의 추억이자 현재로서 존재한다.
오늘 나의 끼니는 단골 기사식당의 4500원짜리 짜장밥. 이게 가끔 생각날 정도로 맛있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