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독립에 힘을 다하고 학문의 활용에 힘써 모범 국민을 완성한다’.
일본 명문 사립대인 와세다대학교의 건학 이념이다. 1882년 문을 연 도쿄전문대학에 뿌리를 둔 전통의 사학답게 총리를 7명이나 배출했다. 이는 도쿄대에 이어 2위다.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대학 출신이며,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사립대로서 일본 발전을 위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면, 21세기의 사명은 미국 하버드대학이나 스탠포드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것임을 내세우는 와세다대학이다.
이처럼 ‘우상향’ 추세의 발전 그래프를 만들어가지만 위기도 있었다. 전호환 전 부산대학교 총장이 번역한 ‘와세다대학의 개혁-재정의 독립 없이 학문의 독립 없다’가 그 예다. ‘일반 기업이라면 이미 파산 선고가 내려질 상태’인 와세다대학에서 10년 동안 재정 개혁을 이끌며 위기를 극복한 세키 쇼타로 부총장의 분투기인 ‘와세다 재생(再生)’이 저본이다.
이 책의 부제에서 밝혔듯이 세키 부총장은 대학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재정 개혁 운동 성공 여부가 와세다 재건의 열쇠라 확신하고 밀어붙였다. ‘학생들의 학비, 혈세인 보조금, 고귀한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는 대학은 기업보다 훨씬 올바르게 경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는 ‘구두쇠 세키’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대학 재정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김도현 전 포스텍 총장과 사립대 총장 11명이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총장의 고뇌-대학의 혁신을 말하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 혁신의 바탕이 자율성 보장과 재정 지원 확대라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전 전 총장은 4년 동안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재정 확충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대학이 요구하는 자율성도 재정의 독립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그의 생각이 2005년 나온 ‘와세다 재생’을 2020년 ‘와세다대학의 개혁’으로 변주한 이유인 듯하다.
욕하면서도 배울 수밖에 없다는 일본이다. 와세다대학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학령인구 감소였다. 일본은 2000년에 접어들면서 정원을 밑도는 대학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2004년엔 전체의 30%인 150여 개 학교에 달했다. 우리나라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자 30만3000여 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18년 후 OECD 국가 평균 대학 진학률 40%를 적용할 경우 12만 명의 신입생을 확보할 수 있다. 2020년 대학입학정원이 56만 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학 10개 가운데 8개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전 전 총장은 설명했다. 대학의 위기가 아니라 몰락이다. 특히 약한 고리가 지방대다. 국립대건 사립대건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왔다.
세키 부총장이 대학에서 처음 확인한 것은 교육 당국의 감독을 따라가며 기득권에 편승하는 안일주의 조직이었다. 속도가 느리고, 낭비가 많고, 기득권이 통용되는 사회, 게다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조직이었다. 기업이라면 당장 파산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 대학의 속사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전 전 총장이 ‘와세다대학의 개혁’을 펴낸 속뜻이 읽힌다. 와세다대학 총장은 증권회사 대표였던 세키 부총장을 영입해 대학 개혁과 재정 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세키 부총장은 차입금 반감과 경비 축소 등 낭비 없는 경영과 함께 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교육 투자로 이를 뒷받침했다. 경직성, 위기의식의 부재, 오늘 과제를 내일로 미루는 태도를 깨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21세기 교육 연구·경영의 그랜드 디자인’을 내놨다. 학문의 독립이 독창적인 첨단연구 도전, 학문의 활용이 전 대학의 평생학습 기관화, 모범 국민 완성은 지구시민 육성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바로 위기를 돌파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다. 또 하나 있다. 대학 개혁의 키워드는 교육·경영 혁신과 책임, 즉 유니버시티 거버넌스의 확립이라는 생각을 대학 구성원이 함께하는 일이다. 위기 의식의 공유와 실행이다.
지난해 12월 한국해양대를 시작으로 부산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외대 동의대에서 총장이 새로 취임하거나 교체 절차를 밟고 있다.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새로운 교수학습 시스템 마련 등 복합 위기에 내몰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생존을 넘어 혁신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총장 선출 방식을 두고 부경대 구성원 사이에서 빚어진 마찰은 그래서 안타깝다. 부경대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