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엔(UN) 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이런 보고서를 내놨다. 즉 산업화 이후 전 세계 산림 면적의 32%가 사라졌고, 습지는 무려 85%가 손실됐다는 내용이다. 또 현존 지구 생물의 20%에 해당하는 100만여 종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훼손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급속한 도시화,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가 초래한 현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적 요소다. 다양한 생물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까닭이다. 그런 다양성 체계의 근간을 무너지게 만들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코로나19 같은 무시무시한 감염병과 신종 바이러스 출현이 잦은 것도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와 관련성이 깊다.
습지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생 동·식물의 식수원뿐 아니라 홍수·기후 조절 기능을 하는 게 바로 습지다. 그 핵심은 일명 ‘이탄층’에 있다. 습지 동·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진흙과 함께 쌓여 있는 지층을 뜻한다. 평소에는 물을 머금고 있다가 날이 가물 때는 물을 빼내면서 ‘수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탄층이 1㎝ 정도 쌓이는데만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니, 실로 놀랍기만 하다.
국내에서 가장 높고 큰 습지라 하면, 영남알프스의 밀양 재약산 사자평이 꼽힌다. ‘재약산 산들늪’으로도 알려져 있다. 산 정상부의 평판한 사자평에 물이 모여 습지대를 이룬 것으로, 규모가 약 58만 ㎡에 이른다. 다른 습지와 달리, 한가운데로 실개천이 관통해 흘러내리는 게 이채롭다. 이런 자연환경 속에 각종 습지생물과 희귀 식물군락이 분포하고, 삵이나 하늘다람쥐·담비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6년 12월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유일 터다.
이곳 보호지역 인근에 고산습지센터를 조성하는 계획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고 한다. 최근 밀양시가 위치·기능 등의 설계도를 공개하면서다. 옛 고사리분교 터에 연면적 429㎡ 크기로, 연내 착공해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여기에 교육·전시·체험시설과 표본실이 갖춰지게 된다. 해발 760m 지점이라, 국내 습지생태학습관 중 최고(最高)인 셈이다. 하지만 방문객이 너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든다. 과거 한때 등산·관광객들의 발길에 훼손됐다가 2013년부터 진행된 복원사업으로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니 말이다.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