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000명이 사는 A마을에 전교생이 고작 5명인 초등학교가 있다고 치자. 10만 명이 생활하는 B마을의 초등학교에는 신입생만 500명이라고 하자. 위정자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손쉬운 해법은 A마을 초등학교를 없애는 거다. 그러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차례로 폐교된다. 반대로 B마을 초등학교는 학생으로 넘치니 인근에 또 다른 초등학교를 지어야 한다. 차츰 중학교 고등학교도 늘려야 할 거다. 이런 방식은 철저히 ‘비용 대비 편익(B/C)’의 관점에서 옳다. 대한민국 지역 개발의 역사가 지금까지 그랬다. 그러나 이 셈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금세 확인된다.
A마을에는 길을 뚫거나 대중교통 노선을 확충할 정당성이 사라진다. 아이를 키울 곳이 없으니 엄마 아빠가 떠난다. 설령 마을에 남아도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낸다. 학원 병원 식당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각종 인프라는 낡고 못 쓰게 된다. 도시철도를 비롯해 필수 인프라를 새로 놓는 일도 ‘편익’을 누릴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된다.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청년도 모두 빠져나간다. A마을은 빠르게 소멸한다.
반면 갈수록 사람이 몰려드는 B마을에는 길을 넓히고, 출산·육아·교육·문화·의료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집 지을 땅조차 부족하니 아파트가 빽빽하고 높게 올라간다. 집값은 폭등한다. 투기 수요가 치솟는다. B마을 주민이 되려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결국 B마을의 인프라는 포화 상태에 이르고, 주변 그린벨트를 해제한 자리에 신도시가 여럿 선다. B마을과 신도시를 잇는 급행 교통망이 구축된다. B마을은 끊임없이 팽창한다. 사람과 자본을 집어삼킨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위정자라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전학생 가정에 집과 일자리를 주는 파격적 혜택을 제공해서라도 A마을 초등학교의 폐교를 막는 거다. 쓸모없어진 인프라를 뜯어고치고 기업을 불러들여, 떠난 주민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전교생이 14명뿐이라 폐교 직전에 놓였던 경남 함양군 서하초등학교가 ‘주택·일자리·교육’을 내걸고 전국에서 학생을 모아 인구 증가와 농촌 살리기를 이뤄낸 게 방증이다. 대신 기형적 공룡이 된 B마을은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 과밀한 사람과 자본을 다른 마을에 골고루 나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게 바로 지역분권과 균형발전의 시각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여전히 비용 대비 편익만 셈한다. 정부는 이달 초 경제 위기를 빌미로,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면 수도권의 문을 우선 열어주겠다고 발표했다. 또 그동안 비수도권에만 주던 보조금을 수도권에도 지급하기로 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 완화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지방 투자 촉진 보조금’ 제도의 조건을 강화해 지역 투자 문턱은 훨씬 높였다.
그물망 전철로도 모자라 수도권에는 광역급행철도(GTX)가 3개나 건설된다. 그 사이 서부산권 최대 숙원인 도시철도 하단~녹산선은 역시나 편익이 적다는 이유로 지난달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 끝이 아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수도권 대학의 정원 총량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지역 교육 인프라 강화가 균형발전의 기본이라는 점은 눈곱만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뿐이랴.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정치인의 닳고 닳은 거짓말이다. 희대의 사기꾼도 한 가지 거짓말을 이렇게 오래 우려먹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10%를 조금 웃도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넘는 2600만 명이 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인 서울의 인구밀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라’고 강요해온 우리 사회 정서는 자연스레 형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정부 정책의 실패 탓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역을 죽이고, 수도권에 사람과 자본을 꾸역꾸역 밀어 넣을 셈법에만 골몰한다.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 수도권의 육중한 무릎이 그러잖아도 허약한 비수도권의 목을 짓누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기획탐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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