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부산의 식수 문제이지 싶다. 오랜 기간 제기돼 왔지만 근본 해결책은커녕, 먹는 물에 대한 불안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부산의 고질적 사안이 그뿐이랴만은 식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시민 건강과 직결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상수원인 낙동강에서는 수질 오염사고가 잊을 만하면 터지고, ‘녹조 뒤범벅’은 만성적 현상이 됐다. 이래서는 먹는 물을 둘러싼 불신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지난달 물금취수장 등에서의 발암물질 ‘1,4-다이옥산’ 검출 파동만 해도 그렇다. 이 사건은 낙동강 식수원 관리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선 부산시의 대처에 기가 찬다. 발암물질 검출 사실을 보름 넘도록 공개하지 않은 데다, 원인분석이 먼저라는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내놨다. 오히려 어물쩍 넘기려 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특히 시상수도사업본부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시는 깜깜이처럼 몰랐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낙동강 하류의 표류수를 식수원으로 쓰는 부산으로서는 수질에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고도 정수처리를 한다지만, 원수 자체가 나쁘거나 유해물질로 수질이 악화한다면, 시민 불안감은 더 커지게 된다. 그 점에서 취수장과 그 인근의 수질을 상시 점검하고 긴급대응체계를 갖춰야 함은 기본 요건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그게 미비한 걸로 드러났다. 시는 뒤늦게 매리·물금취수장에 국가수질자동측정망 설치를 환경부에 건의했지만, 매번 그렇듯 사후약방문이고 꼴사나운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낙동강의 수질 오염사고는 이미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1991년 페놀 악몽을 비롯해 1994년 디클로로메탄 사태, 2004년 구미·김천공단에서의 다이옥산 유출, 2006년 발암물질 퍼클로레이트 유입 따위가 대표적이다. 2008, 2009, 2012, 2013년에도 비슷한 일이 터졌다. 2018년에는 부산과 대구의 수돗물에서 유해성이 의심되는 ‘과불화화합물’이 다량 포함된 걸로 밝혀져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회동수원지 원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그 농도가 미미해 대조를 이뤘다. 결국 낙동강 오염에 따른 식수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간 부산시는 안전하고 깨끗한 물 확보를 입버릇 되뇌었지만,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더구나 오거돈 전 시장은 2년 전에 “내년(2019년)을 먹는 물 문제 해결의 원년으로 삼고 전력을 다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아울러 낙동강 수질 개선에 시가 선제적·주도적으로 대응하고 경남·울산뿐 아니라 상류의 대구·경북과도 대화해 나가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그러나 말만 무성했을뿐이다. 심지어 취수원 다변화 정책의 핵심으로 추진해 온 경남 남강댐 물(광역상수도) 공급을 오 전 시장은 별다른 대안도 없이 전면 중단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산시의회는 거의 무신경한 듯하다. 현 8대 시의회 출범 이후로 부산의 물 문제를 제대로 다루거나 해법을 강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이번 다이옥산 파동에서도 매한가지다.
여야 정치권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2002년 시행된 ‘낙동강 수계 물관리 및 주민 지원 등에 관한 법률’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 지 오래됐다. 오염원 관리와 상류 수질 개선이란 목적이 민망할 정도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법 개정안마저도 상·하류 자치단체 간 협의 미비를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취수원 상류 15㎞로 수변구역 확대, 중·상류 지역 개발사업 때 하류 지자체와의 협의·조정 규정이 개정안의 골자인데, 부산으로서는 필요한 내용이다. 이런 개정안 통과를 위해 지역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스럽다. 21대 들어 다시 발의된 개정안은 그런 전철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도 그렇지만 정부의 책임은 더 크다. 상·하류 지역의 물 갈등이 첨예한 만큼 정부가 적극 중재하고, 더 나아가 근본 처방을 내놔야 함에도 그렇지 않아서다. 지난해 낙동강 수계 자치단체들과의 업무협약은 아예 반쪽에 그쳤다. 부산·경남, 대구·경북·울산이 각각 체결했으니 말이다. 하류 쪽의 식수 안전과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공단이나 오염원이 밀집한 중·상류 쪽의 협조가 필수인데, 이렇게 따로 놀아서야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부산의 맑은 물 확보는 30년 넘도록 답보 상태다. 정권과 시장이 바뀔 때마다 시민에게 약속하고도 지켜지지 않는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어쩌면 신기루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옛날 이집트 원정을 갔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사막에서 지칠 대로 지쳤는데, 그들의 눈앞에 오아시스가 보이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다가가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다. 부산의 숙원인 청정 상수원 확보 문제도 그처럼 느껴진다. 안전하고 맑은 물이 언제쯤 시민의 현실로 나타날지 답답하기만 하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