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의 원조에는 다툼이 있을지 몰라도 음식 만화의 원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일본 만화 ‘맛의 달인’ 말이다. 신문기자 지로가 창간 100주년 특집기사를 위해 최고의 음식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설의 미식가인 우미하라와 궁극의 맛 대결을 펼치는 과정을 다뤘다. 만화가 카리야 테츠의 대표작으로 1983년부터 32년간 무려 111권이 출간됐다. 이후 ‘신의 물방울’ ‘미스터 초밥왕’ ‘라면 요리왕’ 같은 일본 만화가 쏟아지고 한국에서도 미식 만화 붐이 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평론서는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이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먹고 싶어서 흉내만 내는 모양새를 일컫는다. 명가의 후예인 허균은 자유분방한 삶, 파격적인 학문, 혁명적 정치 성향으로 유명하지만 당대의 미식가이기도 했다. 전라도 함열(지금의 익산)에서 궁핍한 귀양살이 도중 맛의 추억에 젖어 책을 썼다. 서문에서 “선현들이 먹는 것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 탐하기를 지적한 것이지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게 아니다”며 식도락을 감쌌다. 근엄한 조선 양반도 음식 앞에서는 침을 삼켰다.
요즘 지상파와 종편채널에서 음식 또는 요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일제히 방영 중이다. 먹는 모습을 조명하는 ‘먹방’,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쿡방’에 이어 음식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먹드’까지 좀처럼 인기가 식지 않는다. 기존 먹방이나 쿡방이 먹거나 조리하는 행위에 주목한다면 이런 드라마들은 음식을 인간관계의 매개체로 활용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음식이 얼마나 사회적이며 정치적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만한전석이다. 만석은 청나라 지배계급인 만주족의 음식, 한석은 피지배층인 한족의 음식이다. 강희제는 회갑을 맞아 두 음식을 섞어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으로 연회를 베풀었다. 한족이 절대 다수인 중국 대륙을 통일한 만주족이 음식으로 민족의 융합을 도모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먹방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경제난 속에 1인 가구는 늘고 있다. 먹는 행위의 간접경험만으로 대리만족과 소확행을 느끼며 정신의 허기를 달랜다는 분석이 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의 유명한 대사다. “당신이 뭘 먹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음식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얘기다. 간접이든 직접이든 잘 먹어야 잘 산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