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7일 ‘동남권관문공항추진위원회’는 호소문을 통해 정부가 지역 민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단체는 “지역 경제 육성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관문공항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에는 미래통합당 부산시의원 5명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의원들은 ‘부산시민의 염원!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대통령은 시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지난달에도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의 결단을 바라는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관문공항 건설을 요구하는 지역 민심 표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움직임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달 말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검증위 발표는 김해공항 확장 및 가덕도 신공항 건설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역민이 검증 결과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김해공항 확장안은 2016년 정부 방침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안전·소음 등의 문제와 24시간 운항 불가능 등을 들어 김해공항이 확장되더라도 관문공항 역할을 할 수 없다며 반발 수위를 높였다. 또 지난해에는 부·울·경 검증위원회를 통해 김해공항 확장안의 부당성을 지적한 바 있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입지 부적절·경제성 부족·국가 부담 증가·행정력 낭비 등을 내세워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주무 부처와 지자체 간 갈등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말 검증위를 발족했다.
검증위는 최근 결과보고서 초안 작성에 들어갔다. ▷안전 ▷소음 ▷환경 ▷수요 등 4개 분과로 짜인 검증위는 내부 토론 등을 거쳐 곧 검증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한 만큼 검증위가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걱정되는 바는 앞으로 나올 검증 결과에 모종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김해신공항 건설이 가져올 부정적 요인이 예상보다 클 때 닥칠 후폭풍을 고려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역 정치권이 갖고 있는 우려의 핵심이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 상황을 확인해 보니 안전·소음·환경 등 항공 수요를 제외한 3개 항목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지적된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까닭에 만약 검증위가 검증 결과를 곧이 곧대로만 발표한다면 김해신공항 확장안이 무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다수의 공항 전문가도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당연히 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커진다. 따라서 정부가 국토부 주관 아래 기존 계획을 다소 변경하는 수준에서 검증 절차를 마무리할 공산이 농후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변경안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시도했다는 최근의 국제신문 보도를 근거로 정부가 김해신공항 확장의 불합리성을 자인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 “검증위가 기술 검증을 넘어선 정책적 판단은 내릴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은 이런 우려 때문이다. 검증은 애초 취지대로 4개 항목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국한돼야 하며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변 권한대행은 지난달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 같은 점을 건의했다. 앞서 부산·울산·경남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같은 달 정 총리를 방문해 이 사안을 바라보는 지역 민심을 전달한 바 있다. 물론 김해신공항 확장안에 문제가 있다는 검증위의 결론이 나온다고 해서 이게 곧바로 가덕도 신공항 신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의 당위성이야 더 굳건해질 수 있으나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수없이 많다.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과 행정절차가 필요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의 정책은 투명한 과정을 거쳐 수립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혹시 밀어닥칠지 모를 파장을 우려해 검증위의 검토 내용에 외부 요인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출된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상당 부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만 해도 정부는 수 차례 약속과 달리 최근 갑작스럽게 불가 쪽으로 방향을 바꿔 비수도권 주민을 허탈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같은 오류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김해신공항 검증과 관련해 지역민이 바라는 바는 간단하다. 더 보태거나 빼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결과 발표다.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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