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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역사를 극복하려면 상대를 공부해야 /이호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01 19:41:4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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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미국에 첫 사절단을 보낸 것은 1860년이었다. 미국이 일본 대표단을 위해 군함 ‘포하탄’호를 보내오자, 일본은 굳이 자국 선원이 운전하는 증기기관 범선 ‘칸렌마루(咸臨丸)’를 따라 보냈다. 페리 제독이 흑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와 강제 개항을 요구한 지 7년 만에 일본 흑선이 처음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물론 동승한 미 해군의 지도와 안내를 받았지만, 일본은 자국 선원이 모는 자국 배로 미국에 갔다 왔다는 자부심과 태평양 횡단이라는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를 관철시킨 사람은 카츠 카이슈(勝海舟)였다. 1853년 미국 흑선의 침범에 놀란 막부는 2년 뒤, 나가사키 해군전습소를 설립하고 네덜란드에서 12문 대포를 장착한 증기기관 범선 ‘칸렌마루’를 들여왔다. 카츠는 이 학교의 1기생이었다. 그는 여기서 네덜란드 교관을 통해 항해술뿐 아니라 유럽의 문물과 사상까지 익혔다. 미국 순방에서 돌아온 후, 그는 고베에 해군조련소를 창설하는 등 구미 열강에 대항하기 위한 해군 육성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보다 큰 업적은 그가 사카모토 류마(坂本龍馬),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 젊은 개혁지사들의 시야를 넓혀주어 훗날 이들이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는 기틀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칸렌마루를 몰고 미국까지 간 그의 진취적인 기상과 식견은 강제 개항과 외세 침략에 대한 분노와 위기감에 휩싸인 혁명가들을 자극하여 메이지유신을 이끈 것이다.

한편 미 군함에 탄 대표단 중에는 오구리 타다마사(小栗忠順)가 있었다. 대표단의 3인자로 막부의 고위직인 그는 워싱턴DC의 해군창 조선소를 둘러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수출을 하려면 상선이 필요하고, 상선을 보호하려면 해군이 있어야 한다.

해군은 근대국가의 필수 조건이다. 오구리는 일본도 미국과 같은 조선소를 갖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귀국 후, 그가 막부의 재무장관과 해군장관에 상당하는 자리에 오르자 그는 세계 수준의 조선소 건설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목선 건조가 고작인 나라에서 갑자기 철선을 만들려니 철공소와 제철소부터 필요했다. 제철소에서 철공소, 조선소까지 일관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대공장을 만드는데 무려 220만 달러가 필요했다.

기울어가는 막부가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대역사였다. 재정에 밝은 오구리는 일본 생사를 프랑스에 독점 판매하여 매년 60만 달러씩 4년에 걸쳐 지불하는 방안을 고안하여 1865년 프랑스 기술로 공사에 착수했다. 1867년 정변이 일어나 막부가 무너졌다. 오구리는 신정부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선박건조 설비는 프랑스 회사에게 저당 잡혔다. 그러나 메이지 신정부는 사업만큼은 죽이지 않고 이어갔다. 이번에는 영국계 은행의 돈을 꾸어와 조선소를 완공했다.

이 요코즈나 조선소는 일본 해군의 주력 공창이 됐다. 1870년 40마력의 동력선을 완성한 데 이어 건조된 군함 세이키호는 유럽 원정까지 갔다 왔다. 마침내 1877년에는 국산 순양함을 완성했다. 미국 시찰에서 자극받은 오구리 덕분에 일본의 산업은 조선뿐 아니라 철강 기계 화학 등 중화학공업국으로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었다. 1875년 일본은 자신들이 미국에 당한 것을 그대로 한국에 써 먹었다. 일본은 운요호를 제물포에 보내 무력시위하고 이듬해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최익현은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 가서 조약 체결에 대해 강하게 저항했고, 수신사로 일본에 처음 파견된 김기수는 일본이 개화된 문물을 보여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 반면 조정은 청나라에 영선사를 보내 청나라의 근대적 병기 제조법을 배워오도록 했고 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김홍집은 청나라 공사관에 가서 ‘조선책략’이란 책을 받아왔다.

우리가 일본에 의한 강압적인 개항에 분개한다면 일본은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 후 무엇을 했던가를 공부했어야 한다. 역사소설가 시바 류타로(司馬 遼太朗)는 ‘메이지라는 국가’에서 메이지시대 일본해군은 이순신을 배우고 추앙했다고 기술했다. 비록 일본에게는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적장이었지만 교훈을 얻을 것은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미국은 무력에 의한 강제개항이라는 역사적 치욕을 안겨준 국가였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배웠다. 역사를 극복하려면 상대를 알고 공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니혼대학 상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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