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은 가히 부산의 시대였다. 부산은 항구도시로서의 지정학적 입지 조건과 농촌으로부터 유입된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신발·섬유·합판과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위주의 수출 주도형 경제로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다. 특히 신발과 합판은 한때 세계 최대의 단일 산업단지를 형성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부산항은 전국 수출입 물동량의 50% 가까이를 처리한 한국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부산의 수출 점유율도 전국에서 점하는 비율이 1972년에는 최고 29%까지 올라갔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제2 도시’에 걸맞은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황금기는 1970년대 말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중화학공업화 흐름에 부산이 동참하지 못했고, 공업용지 부족으로 많은 기업들이 부산을 떠났다. 그 결과 2018년 상반기 전국 대비 부산의 수출 비중은 2.6%까지 하락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7~2047년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부산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심각한 인구 감소율을 보여주고 있다. 2034년에는 인천에 추월 당해 인구로만 보면 ‘제2도시’라는 위상을 내줘야 할 지경이다.
일본의 경우 제2 도시는 오사카가 아니라 요코하마이다. 인천과 지리적 측면에서 유사하게 수도에 연접한 요코하마의 인구는 370만 명으로 오사카의 인구 270만 명을 훨씬 능가한다.
이런 부산의 상황과 반대로 수도권의 경우 인구, 교통, 교육, 문화, 산업 등 사회 전반에서 비대화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수도권 비대화에 따른 비효율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행정적인 권한 이양도 필요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방재정이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의 재정운영 자립능력을 나타내는 부산의 재정자립도는 2018년 기준 서울(79.2%)에 크게 못 미치는 52.4%에 불과하고, 수도권인 경기 61.9%, 인천 60.3%에도 크게 뒤처진다. 지방 도시는 대부분 전국 평균 46.8%에도 못 미치는 재정자립도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재정 운영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 ‘지역재투자법’(가칭) 제정이 필요하다. 일부 정치인이 제안했던 ‘지역재투자법’은 지역에서 유치한 금융기관 예금의 역외유출을 방지하고 해당 지역에서 우선 대출자금화하자는 것인데 이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수한 기업들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소재하여 지방에는 대출해 줄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의 대출재원을 확보해 주는 것만으로는 지역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하기가 어렵다.
필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매년 지방 이전 공공기관 이익의 일정비율을 해당 지역에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하되, 이자금은 지자체의 일반 경상경비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해당 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을 중심으로 사용하도록 사용목적을 엄격히 통제하여 지역 특목세와 유사하게 운용하는 방법이다.
공공기관은 매년 당기순이익의 약 30%정도를 정부에 배당금으로 납부하고 있는데, 지방이전 공공기관들이 이 돈의 일부를 지역에 재투자한다면 금액이 상당할 것이다. 예컨대, 부산에 이전한 공공기관의 당기순이익의 5%정도만 유보하더라도 매년 500억 이상의 돈을 지역에 재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도 부산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지자체에 납부하는 지방세와 또 이들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생활하면서 주변 상권 이용과 주민세 납부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지만, 이에 더하여 공공기관 이익금의 일정비율을 지역에 재투자하도록 한다면 지자체의 재정운영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익금 일부가 지역에 재투자될 경우 해당기업으로부터 정부가 받는 배당재원이 감소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필요한 SOC 사업들을 중앙정부 재정에서 투입되는 대신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는 공공기관들이 내는 유보된 재원을 통해 각 지자체가 그들의 지역실정에 가장 맞는 SOC 사업 등을 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그만큼 국비사업을 줄이면 되니까 크게 손해 볼 일도 없고 그 대신 동일한 재원을 지역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사정은 지역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도권 이외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크게 향상하고 국가균형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어 실질적인 지방분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