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주선 끝에 결혼정보업체에서 등록 취소되었다는 지인에게, 주식에 빗대 결혼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셈이라고 말했다가 살짝 의가 상한 적이 있다. 죄송한 마음은 들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결혼의 숭고한 의미와 별개로 현실에서는 각자의 자질이 금전적으로 평가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사회에 여럿 있는데, 인문학도 그중 하나다. 스타 강사 중심의 방송이나 대규모 강연같은 상업적 대중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전공 연구자들의 학술 공간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인문학 학술시장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본질과 상관없이 여느 시장처럼 가치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학부와 대학원까지, 못해도 10년 이상 공부에 매달려 학위를 받지만 학술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그 학문적 가치는 어디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몇 세대 지나 우연히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니라면 10여 년 노고는 그대로 묻힌다. 운 나쁜 사람은 어디나 있다지만 인문학은 시장 자체가 좁다. 인문학 연구자로 안착할 곳은 대학 내 정규직이 거의 유일하다.
진짜 시장의 구조를 보면, 주된 시장이 있고 그에 못 미치는 장외 시장이 따로 있다. 코스피에 못 들어도 코스닥이 있고,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마이너리그도 나름대로 잘 굴러간다. 그러나 인문학 학술시장에서 대학 정규직 바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강사나 각종 연구원이 있지만 비정규직의 비애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자체로 상황이 열악한 데다 그마저 급격히 줄고 있다. 대학 밖에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따금 시민강좌가 있지만 초단기 아르바이트 수준이다.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에서 인문학을 오롯이 밀고 가는 것은 생계유지보다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국가 지원에 목매는 수밖에 없다. 1년에 한 번, 주로 봄에 공고가 나는 연구재단의 인문학 학술 지원사업이 유일한 방편이다. 학술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많은 연구자가 공고가 나길 기다려 지원서를 쓰느라 밤늦도록 연구실 건물 한 편에 불을 밝힌다. 세상에 덜 알려진 이즈음 캠퍼스의 씁쓸한 풍경 중 하나다.
지원사업은 어디까지나 지원일 뿐이다. 운 좋게 선정된다 해도 2, 3년 단기 과제가 대부분이고 그 후 기약은 없다. 5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는 대개 정규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강사나 연구원의 참여는 한정적이다. 지원사업이란 냉정히 말해 구제정책이다. 요즘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는데, 실업자를 긴급히 지원해 시장 붕괴를 막는 것이 근본 목적일 테다. 인문학 지원사업도 바깥으로 밀려난 연구자를 임시로 도와 대학 학술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새로운 인문학 연구 환경을 만드는 데는 관심도, 효과도 크지 않다. 학술시장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이것 말고는 더 없을까? 대학 구조조정이 파괴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시장에 들지 못한 인문학 연구자는 오래 바깥을 맴돌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이만큼 많으니 지원을 더 늘리라고 소리 높이는 것은 답이 아니다. 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현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변두리의 자연도태만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보다 현재의 인문학 학술시장과 다른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좋겠다. 음악·영화계에는 ‘인디’ 또는 ‘독립’ 영역이 오래전 만들어졌다. 자본의 힘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시스템을 꿈꾼 결과다. 인디음악, 독립영화는 돈을 잘 못 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체성의 근간은 아니다. 가난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예술은 없다. 다만 돈을 벌기까지, 혹은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을 때까지 덜 야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인디, 독립에 붙는 수식어가 ‘대안’이다. 기존 시스템을 완벽히 대체하는 혁명이 아니라 보완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는 의미다.
연구지원서 한 줄마다 정성을 쏟는 조바심 없이 인문학이라는 꿈을 위한 공간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독립인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독립출판 독립서점 등 사례를 떠올리며 현실적 가능성을 상상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학술시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라고 했지만 실은 믿음이다. 작은 공간에서 쌓아나간 인문학의 성과 또한 우리 사회에 유용하다는 믿음 말이다.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