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인문학의 독립을 위하여 /김성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18 19:49:47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몇 차례 주선 끝에 결혼정보업체에서 등록 취소되었다는 지인에게, 주식에 빗대 결혼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셈이라고 말했다가 살짝 의가 상한 적이 있다. 죄송한 마음은 들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결혼의 숭고한 의미와 별개로 현실에서는 각자의 자질이 금전적으로 평가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사회에 여럿 있는데, 인문학도 그중 하나다. 스타 강사 중심의 방송이나 대규모 강연같은 상업적 대중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전공 연구자들의 학술 공간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인문학 학술시장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본질과 상관없이 여느 시장처럼 가치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학부와 대학원까지, 못해도 10년 이상 공부에 매달려 학위를 받지만 학술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그 학문적 가치는 어디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몇 세대 지나 우연히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니라면 10여 년 노고는 그대로 묻힌다. 운 나쁜 사람은 어디나 있다지만 인문학은 시장 자체가 좁다. 인문학 연구자로 안착할 곳은 대학 내 정규직이 거의 유일하다.

진짜 시장의 구조를 보면, 주된 시장이 있고 그에 못 미치는 장외 시장이 따로 있다. 코스피에 못 들어도 코스닥이 있고,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마이너리그도 나름대로 잘 굴러간다. 그러나 인문학 학술시장에서 대학 정규직 바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강사나 각종 연구원이 있지만 비정규직의 비애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자체로 상황이 열악한 데다 그마저 급격히 줄고 있다. 대학 밖에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따금 시민강좌가 있지만 초단기 아르바이트 수준이다.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에서 인문학을 오롯이 밀고 가는 것은 생계유지보다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국가 지원에 목매는 수밖에 없다. 1년에 한 번, 주로 봄에 공고가 나는 연구재단의 인문학 학술 지원사업이 유일한 방편이다. 학술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많은 연구자가 공고가 나길 기다려 지원서를 쓰느라 밤늦도록 연구실 건물 한 편에 불을 밝힌다. 세상에 덜 알려진 이즈음 캠퍼스의 씁쓸한 풍경 중 하나다.

지원사업은 어디까지나 지원일 뿐이다. 운 좋게 선정된다 해도 2, 3년 단기 과제가 대부분이고 그 후 기약은 없다. 5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는 대개 정규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강사나 연구원의 참여는 한정적이다. 지원사업이란 냉정히 말해 구제정책이다. 요즘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는데, 실업자를 긴급히 지원해 시장 붕괴를 막는 것이 근본 목적일 테다. 인문학 지원사업도 바깥으로 밀려난 연구자를 임시로 도와 대학 학술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새로운 인문학 연구 환경을 만드는 데는 관심도, 효과도 크지 않다. 학술시장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이것 말고는 더 없을까? 대학 구조조정이 파괴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시장에 들지 못한 인문학 연구자는 오래 바깥을 맴돌 것이다. 어려운 사람이 이만큼 많으니 지원을 더 늘리라고 소리 높이는 것은 답이 아니다. 비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현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변두리의 자연도태만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보다 현재의 인문학 학술시장과 다른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좋겠다. 음악·영화계에는 ‘인디’ 또는 ‘독립’ 영역이 오래전 만들어졌다. 자본의 힘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시스템을 꿈꾼 결과다. 인디음악, 독립영화는 돈을 잘 못 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체성의 근간은 아니다. 가난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예술은 없다. 다만 돈을 벌기까지, 혹은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을 때까지 덜 야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인디, 독립에 붙는 수식어가 ‘대안’이다. 기존 시스템을 완벽히 대체하는 혁명이 아니라 보완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는 의미다.

연구지원서 한 줄마다 정성을 쏟는 조바심 없이 인문학이라는 꿈을 위한 공간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독립인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독립출판 독립서점 등 사례를 떠올리며 현실적 가능성을 상상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학술시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라고 했지만 실은 믿음이다. 작은 공간에서 쌓아나간 인문학의 성과 또한 우리 사회에 유용하다는 믿음 말이다.

문화연구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7. 7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8. 8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9. 9[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10. 10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1. 1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2. 2[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MDL 지뢰 폭발 사건은 ‘도발’…北 정권 행위 강력 규탄”
  3. 3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4. 4외모·학력차별…민간도 공공도 불공정 채용
  5. 5부산시의회, 교통공사·시설공단 대표 후보 ‘부적격’ 의견
  6. 6[2026 국감 브리핑] 자격유지검사 않는 고령운수자 1400명
  7. 7[속보] 김여정, 정부 대북 의료장비 지원 방침에 “지뢰 사고 조작 뒤 또다른 광대극…변종된 정치적 도발”
  8. 8박성훈, 부산 보훈의료 공백 해소 물꼬…보훈부 장관 “전면 조사해 대책 마련”
  9. 9국힘 정점식 “李 대통령·이화영, 협력이냐 배신이냐 ‘죄수의 딜레마’”
  10. 10백종헌 “부산대병원이 7년째 권역센터 빠진게 정상인가” 질타
  1. 1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2. 2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3. 3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 시대…‘머무는 관광’으로 질적 도약 모색
  5. 5누리호 5차 발사…군집위성 5기 모두 교신 성공(종합)
  6. 6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107조…글로벌 빅테크 첫 기록(종합)
  7. 7홈플러스, 희망퇴직 돌입…MBK 경영권도 사라져
  8. 8부울경 산학 기술력으로 누리호 성공 쐈다
  9. 9근무시간에 사주 상담…HUG 직원 면직 처분
  10. 10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0조 시대’ 임박
  1. 1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2. 2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3. 3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4. 4전재수 “G20정상회의 유치 도전…북항 돔 아레나 조성 추진”
  5. 5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6. 6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7. 7[뭐라노] ‘북항 찍고’ 광안리·해운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8. 8금융기관 해킹 IP 상당수 ‘세탁용’
  9. 9[뭐라노] 금정구가 인구감소지역이라고?
  10. 10“북항 모빌리티, 원도심 연계해야…환승센터 전면 재설계를”
  1. 1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2. 2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3. 3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4. 4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5. 5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6. 6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7. 7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0. 10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유튜브 쇼츠 정치
통행료 면제 명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누리호의 도전, 역대 최다 15기 위성 싣고 우주로
국제기구 인증보다 주민 체감 효과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