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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시시(詩詩)한 봄입니다 /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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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5-17 19:59:0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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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은 너무합니다. 연착 없이 도착해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처럼 어김없습니다. 곧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다. 달뜬 상춘객의 몸과 마음이 오월의 플랫폼에서 서성입니다. 좁은 생활 반경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퍽 조심스럽습니다. 손끝에 묻어난 노란 송화가루를 훅 불어 날리니 허공에 분분합니다. 시집 한 권을 꺼내봅니다. 안 되겠어요. 포말 가득한 바다가 보고 싶습니다. 시집을 차표 삼아 마음만이라도 떠나야겠습니다.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중). 첫 여행지는 제주, 종달리입니다. 공항에서 동일주노선 버스를 타고 가다 성산일출봉 정수리가 보일 때쯤 내리면 이름도 예쁜 종달리가 맞습니다. 올레 1코스를 따라 걸으면 해안도로 수국길이 이어지는데 유월이면 만개합니다. 현지 해녀들이 운영하는 해녀의 집에서 전복죽을 사 먹고 독립서점 ‘소심한 책방’에 들러 책 구경도 합니다. 오늘 밤은 성산포에서 보내야겠어요.

‘성산포에서는/관광으로 온 젊은/사원 하나가/만년필에/바닷물을 담고 있다’(이생진의 시 ‘만년필’ 전문). 성산포에서는 이생진의 시를 읽어야 합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는 성산포가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성산포에서는 말보다 감탄사가 먼저 나옵니다. 손을 덜 탄 바다는 물빛이 짙어 두 손을 담그면 파랗게 물들 것만 같습니다.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는 시인은 요즘 많은 이가 꿈꾸는 ‘제주 한달살이’를 이미 예감했나 봅니다. 유치하지만 작은 돌하르방 하나 사서 가방에 넣습니다. 성산포 바람에 떠밀려 다음 여행지로 향합니다. 벌써 그리운 제주입니다.

‘대웅전 앞, 사각의 뜰/먼지나 흙이 되어 모두 돌아간 시간/아직 버티고 있는 저 힘/(중략) 이유도 모른 채 중심에서 떠나간 사람들/죽죽 금 간 모습으로 감은사 탑 주위를 돈다’(강봉덕의 시 ‘감은사’ 중). 감은사지는 경주 동쪽 외곽에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절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아들인 신문왕이 완성했습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다에 묻힌 문무대왕의 해중능묘를 보려 먼저 이견대에 오릅니다. 만파식적을 불어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했다는 전설 속 대나무 피리의 소리가 파도에 섞이어 들립니다. 국가와 국민이 처한 지금의 난관도 무사히 극복하기를 바라며 만파식적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감은사지는 모두 흙이 되어 돌아간 자리에 큰 삼층 석탑 두 기만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선 빈 절터입니다. 입장료도 없고 지키는 이도 없습니다. 참배할 대웅전도 없이 초석만이 남아 있는데도 그 기운이 허하지 않음은 아이러니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두 탑의 당당함에 물들어 몸이 바로 섭니다. 합장하고 느린 걸음으로 탑돌이를 합니다. 어느 쪽으로 세 바퀴 돌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검색하려다 그만둡니다. 형식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겠지요. 날이 지려 하네요. 오늘 밤 머물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경주를 떠나 해남으로 향합니다. 광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저녁입니다. 종점에서 어둑한 길을 짚어 대흥사 쪽으로 삼십여 분 걸어갑니다. 참배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지만 다행히 숙소의 문은 열려 있네요. 오늘 묵을 곳은 유선관입니다. 100년 역사의 한옥 여관입니다. 한때 신도와 수도승의 객사였지만 지금은 여관으로 운영 중입니다. 오래된 방에는 열쇠 없이 문고리에 놋숟가락 하나 걸려 있습니다. 따로 숨길 게 없어 내버려 두고 아랫목에 눕습니다. 산의 밤은 아직 춥네요.

‘산사의 계곡/하늘의 빈 술잔엔/서푸른 취기의 바람이 일렁이고/지금 어느 산맥 뒤에서/두 연인의 손이 만난다’(최승자의 시 ‘해남 대흥사에서’ 중). 엎드린 채 공책에 시를 필사합니다. 술잔에 바람을 채워 마신 시인도 예전에 이곳, 이 방에 묵은 적이 있을까요. 시집 한 권에 마음까지 취하는 밤입니다.

깜박 졸다 깨니 어느새 집입니다. 시시한 봄을 詩詩한 봄으로 즐겨보세요. 마음으로 떠나니 어딘들 못갈까요. 좋은 날이 곧 오겠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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