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을 위해 부산신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신항이 로테르담 등 해외 경쟁 항만과 비교했을 때 완전 자동화 면에서 뒤처져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나온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그 이면에 실직 문제가 있다는 얘기에는 크게 수긍했다. 자동화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점을 현장에서 바로 청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디지털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 선도국가를 천명했다. 이 날 분위기는 2년 전 부산신항 현장과는 사뭇 달랐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는 디지털 경제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을 새로운 일자리로 옮기게 하고, 새 일자리를 찾기까지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을 설명했다.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최근 정부가 제시하는 디지털 경제는 비대면 의료·교육 서비스와 인공지능·빅데이터 산업과의 결합 등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디지털 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5G망, 데이터 입력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했던 것이 오늘날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을 키워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디지털 경제가 지역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우선 디지털 경제에 선행되는 이른바 한국형 뉴딜은 ‘디지털 뉴딜’로, 데이터를 수집해 입력하고 활용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와 산단, 도로와 교통망, 노후 SOC(사회간접자본) 등 국가기반시설을 스마트화하는 일자리 역시 지역에서도 창출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 와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디지털 경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가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이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대부분은 ‘판교’로 대표되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금도 벤처 관련 인력과 정보, 자금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된다면 관련 산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수도권에 관련 산업이 집중되고, 정부 정책 지원과 자금이 수도권에 몰리는 것을 강제로 차단할 수도 없다.
지역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해오던 기존 사업을 재포장하는 차원이 아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대규모 국가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추진한다면, 지방정부도 지역의 현안을 발굴해 디지털 경제와 접목하고,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전날 수산업 위기 대응을 위해 한국판 뉴딜과 연계해 달라고 해양수산부에 제안한 내용을 보면, ‘기존 사업의 재포장’이 대부분이다. 지역의 당면 현안이기도 하겠지만, 익히 중앙부처에서도 수산업 위기의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을 정리하는 수준에 그쳐서야 되겠나 싶다. 가령, 동삼혁신지구 해양 클러스터의 경우, 해양 분야에 특화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부산이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는 다음 달에 한국판 뉴딜 세부 추진 방안을 발표하는 등 디지털 경제 구상을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다. 또 산업통상자원부는 주력 산업이 쇠퇴한 지역을 4개 권역 11개 지역으로 나눠 14개 활력 회복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지역과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다. 부산뿐 아니라 울산, 경남 지자체 역시 ‘지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중앙정부에 적극적으로 제안해서 지역의 디지털 경제 붐을 일으켜야 한다. 지역의 사정은 지역이 잘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디지털 경제 속도전’ 속에서 또다시 수도권에 밀려변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본부 정치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