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액정표시장치(LCD)의 차이가 무엇인가?” 2016년 10월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GSAT)에 출제된 한 문제로,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풀기 어려운 난이도를 지녔다. “사자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 용호상박(龍虎相搏), 당구풍월(堂狗風月)에 등장하는 동물은?” 지난해 4월 GSAT에 나온 문제는 한자에 약한 수험생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995년부터 시행된 GSAT는 매번 이런 화제를 낳으며 국내 기업의 공채시험 문화를 선도해왔다. 수십만 명의 응시생이 몰리는 최고 기업답게 시험 수준이 높은 데다, 서류전형 없이 지원자 전원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개방성도 보였다. ‘삼성고시’ ‘삼성수능’이란 별칭이 붙은 까닭이다.
GSAT가 올해부터 온라인 시험으로 바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동참하고, 대규모 현장 시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란다. 시험과목도 언어논리, 수리논리, 추리, 시각적 사고 등 4개에서 수리영역, 추리영역 등 2개로 줄어든다. 최대 파격은 응시자가 자신의 집에서 PC로 시험을 보는 것. 부정행위를 어떻게 막을 지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 삼성 측은 “응시 중 보안솔루션 적용, 원격 모니터링, 면접 시 약식 테스트 등 검증 프로세스를 마련했다”고 했다. 무리 없이 시험을 치를 경우, 우리나라는 온라인 시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접속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정보통신환경(유비쿼터스)의 구현에 성큼 다가서는 셈이다.
그런 문명을 일구려면 그에 걸맞은 철학이 필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사과문에서 밝힌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키고, 공동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이 사는 사회.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거나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철학 말이다. 그 사회의 시민은 잘못된 기존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와 공동체 질서를 찾아가는 정신적 유목민(노마드)의 삶을 추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그런 철학을 ‘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했다. 그는 “노마드에겐 역사가 없다”며 새 역사 창조를 주문했다.
유비쿼터스와 노마디즘의 완전한 만남. 포스트 코로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꿈이다. GSAT의 온라인 시험은 그 만남을 위한 작은 실험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