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주말시합을 앞두고/ 머리맡에 공을 놓고는/ 눕는다
오지 않는 잠을 위하여/ 천장을 그라운드 삼아/ 손가락에 실밥을 걸쳐본다
(중략)
허공으로 떠오르는 백여덟 개의 번뇌들
붉은 솔기는 이내 생각에 젖어/ 무겁게 회전했다
누워 떡먹기 같은 나의 공받기는/ 제대로 된 낙하지점을 찾지 못하고/ 서둘러 몸을 피했다
옆에 누운 아내의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졸시 ‘누워서 공받기’중)
사회인야구를 시작한 십수 년 전, 주말에 있을 경기를 기다리며 한시도 공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던 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마 가장 즐겨 했었던 일이 자기 전 누워 공 그립을 잡는 연습과 함께 제대로 포구할 수 있도록 위로 던지며 맨손으로 받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매 순간 경기 중에 일어날 상황을 그려보고 그다음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흔히 말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곧잘 하곤 했던 것이다.
마치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 건에 찍히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전설의 투수 톰 글래빈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그때 공이 회전하는 것을 보며 그 실밥의 모습까지 애써 보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하필 복잡하게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공을 놓쳐 곁에 있던 아내에게 그만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야구공의 실밥 수가 백여덟 개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지닌 백여덟 가지의 번뇌는 결국 욕망과 집착에서 생겨나기에 이를 이겨내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야구도 그 공의 실밥 수를 통해 이를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야구해설가는 야구가 힘을 빼야 더 잘할 수 있는 스포츠라 하였는데, 그런 면에서 이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힘도 빼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여러모로 야구와 우리 생은 닮은 점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여하튼 그때 그 경험은 기억 속에 아주 선명히 남았다. 유년 시절 꽤나 즐겼던 동네 야구의 관성이 처음 시작한 사회인야구에 대한 열정과 맞아떨어져 강력한 몰입으로 이어지던 시기라 그 당시는 공을 잡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두근거리며 시합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 묘한 긴장이 짜릿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때처럼 그렇게 기다려만 왔던 그라운드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사람 간 대면이 통제되는 이 지구의 역설로 인해 비록 봄이 왔는데도 야구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야구에 목말라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속한 사회인야구 리그가 5월 첫째 주부터 발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쓰는 것을 전제로 재개됐다. 또한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고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한국 프로야구(KBO)도 우여곡절 끝에 무관중 경기로 개막했다. 게다가 방역 선진국다운 면모를 보이며 매일같이 미국 전역에 한국 프로야구 한 경기가 ESPN 스포츠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니, 어쩌면 또 다른 한류의 시작으로 여겨질 정도다.
겨우내 묵은 글러브와 스파이크의 먼지를 털어내고, 늘 만지작거리던 공의 촉감을 기억하려 해본다.
땀내와 함께 얼룩지는 그라운드 위에서 초심(初心)을 간직한 채 열정을 마음껏 꽃피울 바로 지금이 ‘새로운 봄날’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