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라’고 했다. 최근 관계부처 합동회의에서는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를 제시하고 10개 과제를 나열했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과거의 재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한 경제구조 고도화와 이를 위한 규제 개혁이라는 표현을 보니, 지난 수십 년간 정부가 제시해 온 성장전략의 재탕처럼 느껴진다.
미국 대공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의 의미는 전후 새로운 사회체제를 낳는 사회계약으로 요약될 수 있다. 뉴딜(New Deal)이란 새로운 사회 계약이자 그 이전 사회구조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다. 그 이전 사회는 우리가 흔히 자유방임주의 체제라 부르던 것으로 대공황이 그 경제적 귀결이라면, 자유주의체제 몰락과 파시즘 등장이 그 정치적 귀결이다. 역사학자 슈펭글러는, 이 모든 것을 집약해 ‘서구의 몰락’이라 했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정부 주도의 거대한 투자를 통해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만 한 것이 아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고, 상업은행은 예대 업무만 하도록 해 투기자본주의를 종식시킨다. 케인즈 식으로 표현하면 ‘금리생활자들의 안락사’이다.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한다. 이는 전후 계급 타협의 표본이 된다. 최저임금제, 실업구제 등 복지국가의 근간을 만든 것도 이때다.
‘한국판 뉴딜’이든 뭐든 새로운 정책 패키지가 ‘뉴딜’이라는 이름에 걸맞기 위해서는 ‘위기의 구조’를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많은 연구자는 전후 한국의 성장체제를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 국가로의 변모’로 요약한다. 발전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 주도로 자원을 동원하는 체제를 뜻한다면, 신자유주의 국가는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금융 해방을 통해 자본의 자율성을 높인다. 그 결과는 불평등 심화와 불안정 고용 증대, 기후위기, ‘시장의 권력화’이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1인당 탄소배출량이 매우 높은 나라다.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현저히 낮다. 발전국가의 유산이다.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유산이다. 불평등의 면에서도, 기후위기 측면에서도 한국은 매우 성적이 나쁘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율이 가장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19에 잘 대응했다는 것이 이런 현실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한국판 뉴딜’이 ‘뉴딜’이라면, 이와 같은 성장체제가 낳은 위기에 대한 대안과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시해야 한다. 미래의 사회계약은 시장권력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확립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녹색 성장(탄소 제로 사회) 경로를 만들고, 노동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도록 일자리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 모든 대안적 모델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국가의 역능’을 재활성화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유포한 ‘정부의 비효율성’ ‘정부 지출은 낭비’라는 그 흔한 관념을 극복하는 것 말이다.
‘경제의 디지털화를 위한 규제 완화’는 한국판 뉴딜이 아니라 한국 신자유주의 국가의 완성을 위한 기획처럼 들린다. 청와대가 한국판 뉴딜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의문이 들고, 경제 관료는 대통령의 취지를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 갸우뚱 하게 한다. ‘한국판 뉴딜’이 구호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이름과 격에 맞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국가의 역능을 실현할 의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린 뉴딜’일 것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관련 발전 및 인프라 구축, 건축물 에너지 효율성 증대, 수송체계의 탈탄소화를 위한 유인 체계와 규제를 포함한다. 그 과정에서 수십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양질의 공공 부문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를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담대한 국가투자가 필요하고, 다양한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일관된 정책 기조하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상력도 요구된다. 정부는 그럴 의지가 있는가?
경남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