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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우동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12 19:56:4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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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담긴 작가의 고백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성공한 어른의 고백은 묵직하다. 모른다는 솔직한 답변에 담긴 당당함과 솔직함. 왜 나는 그동안 모른다고,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지 못했을까.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뉴노멀’이 그렇고 ‘지속가능성’이 그랬듯 트렌디한 단어가 등장하면 나도 좇아 써야 할 것 같았고 여물지 못한 지식이라도 꺼내놓아야 ‘깨어있는 요즘 청년’이 될 것 같았다.

팬층이 두터웠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각기 다른 분야 전문가가 나와 명소를 여행하고 서로의 지식을 엮어간다. 진행자의 돌발 질문에도 지식의 꼬리는 끝날 줄 모른다. 넓고 얕은 지식은 여전히 팟캐스트 상위를 다투고, 유튜브는 경제 정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꺼운 양서를 5분 안팎 영상으로 변환한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콘텐츠가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큼 재밌다는 점이다. 이제 지적 탐구는 고루하지 않다. 정보가 유통되고 지식은 적극 소비된다. 만인이 ‘앎’의 영역에 들어서자 대화의 전제 역시 앎이 되었다. ‘사실… 잘 몰라.’ 쭈뻣거리며 꺼낸 말에 대화는 종결되고 나에 대한 평가는 시작된다.

제 쓰임을 상실한 단어 ‘모른다’는 교묘히 변형되어 쓰였다. 4월 초로 돌아가 보자.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니 하루빨리 국내를 떠나야 한다는 공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망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매스컴을 뒤덮었다, 4월 말엔 코로나19가 의도적으로 유출됐을지 모른다는 음모론과 통계상 사전투표 결과에 인위적 개입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파고들었다. ‘이럴지도 모른다’는 문장으로 거짓된 앎을 유도한다. 눈에 안 보이는 바이러스로 관계가 단절되고 생계가 흔들렸던 시민은 이제 형체 없는 불안감과도 맞서야 했다.

시대를 읽는 논객은 많지만 꺼내진 언어에 책임을 다하는 논객은 많지 않다. 문제는 해설과 규정의 오용이다. 어느 땐 다른 의도가 담기기도 한다. 상황에 대한 해설보다 규정을 통해 새롭게 상황을 설정한다.

경제가 불안하다는 규정으로 시장의 불안함을, 지도자의 리더십이 불안하다는 규정으로 의구심을 조장한다. 논객은 시대와 대상을 해설했다 말하지만 도출된 언어는 날 선 규정에 가까웠다.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을 판데믹이라 한다. 판데믹에 이은 ‘오염된 앎’의 유행.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과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이 합쳐져 새 용어 ‘인포데믹’이 만들어졌다. 지금 전 세계는 판데믹과 에피데믹 두 개의 전염병과 싸우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 건 일상이 유지되고 사재기가 없는, 독자적 생존보다 공동의 안정을 택한 사회여서다. 불안 공포 속에서 의도적 거리두기로 지켜낸 상호 간 신뢰가 과도한 추정과 넘겨짚음으로 흔들리고 있다. 너무 많은 ‘앎’이 교차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이 혼란스럽다. 개인의 대처법은 같다.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건 사회적 거리두기, 거짓 정보와의 거리두기다.

하인리히 힐은 말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 표면에 집중할 때 내면의 진실은 가려진다. 모름은 고백이자 태도일 것이다. 모른다는 말이 앞설 때, 마주한 상대의 의견이 스며들고 새로움이 보인다.

‘모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섬을 낳고 그 빈자리에 꺼내져야 할 진실, 알아야 할 현상, 관련된 당사자의 언어가 채워진다. 모두가 앎을 말하는 지금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하는 단어는 무엇일지 고민해보자.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유야.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깨달음과 앎에 가까웠던 두 현자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남긴 문장이다.

이제 모른다는 고백을 반겨보자. 그들의 용기를 응원하고 그들이 내어준 발화의 자리에 주목하자. 누군가의 침묵과 겸손 덕에 새로운 진실이 꺼내질 테니까. 그리고 되돌아보자.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고백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던지. 나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안다고 말해왔다. 뒤늦게 용기 내어 고백한다.

“모릅니다. 그땐 잘 아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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