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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양치기 소년’이 진실을 말하게 하라 /이경식

김정은 사망설 오보, 대북 확증편향서 비롯

남북협력 재개하려면 군축 통한 여건 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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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떼가 나타났다!” 파수꾼 ‘가’가 망루에서 소리친다. 파수꾼 ‘나’는 양철북을 두드린다. 마을 주민들은 그때마다 공포에 떤다. 그러던 어느 날 파수꾼 ‘다’가 이리 떼는 없고 흰구름만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는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려다, 그러면 마을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촌장의 설득에 넘어가 양철북을 두드리고 만다.

1974년 나온 극작가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은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공포심의 조장’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수공(水攻) 위협을 과장해 일으킨 ‘평화의 댐’ 건설사업,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직전 여당 관계자가 북한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총풍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솝우화의 하나인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의 한국판 버전이다.

총풍 사건이 일어난 지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양치기 소년’은 이제 우화로만 존재할까. 안타깝게도 최근 여전히 건재한 ‘양치기 소년’을 목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오보를 통해서다. 한 인터넷 매체의 근거없는 김 위원장 건강 이상 보도가 국내외에서 확대재생산되더니, “스스로 일어서거나 걷지 못한다”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주장으로 번졌다. 그 황당함이 “몸에 자외선을 쬐거나 소독제를 주입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치료법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파장은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의 경우는 무지의 소치인 듯해 쓴웃음을 짓고 넘길 수 있다. 반면 북한 관련 오보는 그럴 수 없다는 데 비극성이 있다. 1986년 11월의 ‘김일성 피살설’, 김정일 2004년 사망설, 2008년 8월의 ‘김정일 대역(代役)설’ 등 역사적 뿌리가 깊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추측도 못 하냐. 정황은 매우 의심스러웠다”거나, “(태영호, 지성호 등 오보를 낸) 탈북 국회의원 당선자들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사태에 대해서 충분히 그런 예측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보수진영의 오보 옹호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보 옹호 세력은 적지 않다. 그들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북한 지도자가 죽고,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시나리오 같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만 보려 한다. 이른바 ‘대북 확증편향’이다. 주관과 비합리에 기대 풀어내는 언행이라는 점에서 그 정치는 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확증편향이 실현된 적 없을 뿐더러, 향후에도 그럴 공산이 크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의 김영삼 정부와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와병설 이후의 이명박 정부가 흡수통일을 꿈꾸며 대북 강경책을 썼지만, 북한의 핵무력을 키워주는 부정적 결과만 초래했을 따름이다.

‘양치기 소년’은 보수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에도 존재한다. 2018년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에서 비핵화·반전·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그 관건은 군축이다. 하지만 남북은 현재 군비 증강에 매진하고 있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40조3347억 원이었던 남한의 국방예산은 올해 50조1527억 원으로 약 10조 원 늘어났다. 문 정부 3년간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은 7.5%로, 이명박(5.2%)·박근혜(4.1%) 정부를 압도한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KN-23 단거리미사일, 신형전술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나선 건 그 맞대응으로 읽힌다. 남한과의 군사력 격차를 의식할수록 북한의 핵무기 의존은 커진다. 또 그럴수록 한반도 비핵화는 멀어진다.

“남북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 개별관광, 이산가족 상봉, 실향민의 고향방문, 유해 공동발굴 등 제안은 유효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남북 협력사업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남북이 단계적 군축을 통해 평화적 여건을 조성해나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코로나 협력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무기 생산과 거래를 계속할 때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12일 부활절 연설에서 군축과 함께 국방비의 코로나 투입을 호소했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루스벨트호가 약 900명에 달하는 승무원의 코로나 감염으로 무력해진 것은 군사력을 앞세운 패권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 문명의 최대 화두는 반전과 평화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대 강국의 힘이 맞부딪히는 한반도는 그 화두를 실천하는 최일선이다. 더는 무기의 그늘을 평화의 울타리라고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을 그곳에 방치해선 안 된다. 이젠 ‘양치기 소년’이 진실을 말하게 하자.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환골탈태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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