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좀 이상해졌다. 인구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가 인천에 따라잡힌 지 오래됐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새삼 꺼내려는 것도 아니다. 이 도시를 지탱해온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게 내려앉는 듯해서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기고, 타향인을 기꺼이 껴안는 포용성과 개방성으로 국난 극복에 힘을 보탠 게 부산이다. 뿐인가. 세계적인 무역항과 산업자본 덕분에 한때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쪽으로 쏠린 듯해도 결정적인 순간엔 정치적 균형을 잡아온 곳도 부산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신군부의 민정당 후보 낙선자 5명 중 3명이 부산에서 나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한 것도 자랑이라면 자랑거리다. 하지만 그런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부산이 왜 이렇게 되었나. 이게 부산 시민의 잘못인가.
이 굴욕감의 근원이 어디인지 한번 따져보자. 전임 서병수 시장 재임 4년동안 부산시청은 9번이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시장의 최측근인 정무특보는 뇌물을 받아 구속되고 경제특보는 엘시티 사건으로 쇠고랑을 찼다. 하위직부터 고위직까지 채용 비리, 납품 비리, 부동산 투기 등 혐의도 다양했다. 전국을 뒤흔든 엘시티 게이트로 지역의 정관계 인사들은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부산에서 유력자인지 여부는 엘시티 선물 발송 명단에 포함돼 있는지 아닌지로 구분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다. 이런 뉴스가 전국민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이 상처받지 않은 부산 시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조금 다를 줄 알았던 민선 7기는 오히려 두세발 더 나갔다. 비위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 부산의 경제부시장으로 온 것만도 사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의혹이 봇물을 이루는데도 엄호하기 바빴던 오거돈 전 시장의 태도다. 그는 조국 전 민정수석의 딸 장학금 특혜 의혹 때문에 해외 출장 중 시장 집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부산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저지른 비리 때문에 부산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권력자 자녀의 불공정 학사 관리에 부산 교육계가 동원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전국민의 이목이 쏠린 ‘조국’ ‘유재수’ 사건의 진원지가 모두 부산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자리 욕심, 누군가의 자녀 욕심에 부산이 이용됐을 뿐 이런 일을 초래하거나 방조한 건 시민이 아니다. 오 전 시장은 뒤늦게 “부산시도 피해자”라고 항변했지만 진짜 피해자는 부산 시민이다.
우리는 이제 현직 시장이 성추행 사실을 자백하며 시장직을 자진 사퇴하는 장면을 TV생중계로 지켜봐야 하는 참담한 경험까지 갖게 됐다. 전무후무한 스캔들을 일으키고도 오 전 시장은 보름 가까이 잠적 상태다. 지방자치 23년만에 처음으로 시정의 주체 세력을 바꾼 시민의 기대를 이렇게 배신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자랑스러운 부산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부산을 이렇게 망쳐놔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사람이 원하는 직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노력이란 게 있다. 그 노력이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건강한 사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다. 땀의 가치는 간데 없고 누군가의 줄을 잡고 낙하산처럼 내려 꽂히는 게 능력으로 박수받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로 입신하고 정치로 양명하지 못하는 사람만 바보다. 공무원 사회에선 9급으로 시작해 6급으로 마감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5급 사무관을 달고 퇴직하면 가문의 영광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 곳에 힘 가진 자의 영향력으로 뒷문 입장한 것으로도 부족해 고위직까지 꿰찬 사람이 수두룩하니 공직사회가 잘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런 사람을 상관으로 둔 공무원들의 사기가 진작될 리도 없다. 불공정 속에서 공정을 외쳐본들 돌아오는 건 냉소 뿐이다.
민선 7기 출범 이후 부산시 주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 게 비선 실세 이야기다. 과도한 정무라인 배치 때도 그랬고, 오 전 시장의 무리한 유재수 감싸기 때도 그랬다. 비선은 공식 직책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산시 인사는 모두 이들로 통한다는 말이 파다했다. 그래놓고 정작 ‘유재수’나 ‘오거돈’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50만 시민의 시정을 담당하는 시청이 진공 상태인데 수습하는 사람도 없다. 권력의 장막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은 행사하지만 장막이 걷히는 순간 실체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게 비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때문에 탄핵이라도 됐다. 그러나 부산시정을 망친 대가는 누구도 치르지 않고 있다. 그저 부끄러움만 부산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