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초선 의원이 151명이라고 한다. 과반이 넘는 숫자다. 의정 경험 있는 의원 수가 줄어든다는 건 국회 역사에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 잘못이 많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듯 물갈이를 하는 것이고, 초선 의원에 거는 기대 또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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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4·15 총선 직후부터 초선 의원들은 각종 인터뷰에 응하고 다양한 토론에 패널로 참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토론 방송을 시청하다 채널을 돌렸다. 초선 의원들의 ‘언어’가 어쩌면 저렇게 구정치인이 쓰던 말과 똑같을까 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사안을 표현하는 방식도 선배 의원들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초선 의원들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말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구습에 젖은 언어를 사용해 버릇 하면 생각도 낡게 된다. 한 가지 예만 들자면,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정치인이 빈도 높게 사용했던 줄임말이 ‘내로남불’이다. 너무 익숙해 그 뜻풀이는 필요도 없으리라. 이 정치적 술어(?)의 전략적 본질은 ‘과거를 들추어내는’ 데에 있다. 과거에 정당화되었던 어떤 행위와 연관하여 이를 뒤집어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때 주로 쓰기 때문이다. ‘새로움’의 상징이자 실체인 초선 의원이라면 이런 낡은 표현은 피하는 게 좋다.
앞으로 ‘내로남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도 굳이 그 표현을 가져다 쓸 필요 없다. 자꾸 쓰다 보면 그 말의 프레임에 사고가 갇히게 되고, 행동 또한 그렇게 되기 쉽다. 구습을 고치는 일은 작은 것,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 같은 고위 공직자라면 ‘구태 정치 언어 목록’이라도 만들어 매일 조금씩 고쳐나가는 노력도 해야 한다. 치국(治國)의 현장에서 일할 때도 일상의 수신(修身)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 있다.
물론 초선 의원이 반드시 ‘정치 신인’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직·간접적으로 정치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지방선거에서 총선까지 출마 경험 있는 사람도 있고, 정부 요직을 맡았던 사람도 있으며, 시민운동가로 활약하던 이도 있고, 각 정치 진영의 논리를 대변해오던 논객도 있다. 그럼에도 국민은 초선 의원들에게 ‘처음’이라는 말의 신선함을 담보하는 생명력과 활력을 기대한다. 아니 국민은 더 이상 기대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기대가 배신당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국민은 요구할 것이다. 초선 의원들이 권력의 낡은 냄새를 풍기는 것을 경계하고, 신선한 활력으로 창의적인 정치를 해나가라고 요구할 것이다.
요구라는 말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초선 의원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첫 번째 부탁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대부분 국회의원은 선거제도 운용상 지역구에서 선출되지만, 지역구의 대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대표이다.
선거 유세 동안 ‘지역구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약처럼 말했고, 당선 후 인터뷰에서도 ‘지역 사안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할지라도, 자기 지역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주된 임무는 아니다. 지역구의 사안을 국회에 가져와 다루더라도 나라 전체의 이익이라는 맥락에서 토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데 종종 망각되거나 무시된다.
두 번째로 부탁하고 싶은 것도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국회는 ‘말하는’ 곳이다. 국회는 물론 입법하는 곳이고, 입법을 위해 의결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법안을 놓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토론을 해야 한다. 의회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된 영국에서 상하 양원을 통칭해 팔러먼트(Parliament)라고 하는데 그 어원적 의미는 ‘말하다’이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의원이고, 의원들은 말을 잘해야 한다. 제대로 된 토론 없는 의회는 속된 말로 ‘팥소 없는 찐빵’보다 더 퍽퍽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말솜씨와 토론 능력은, 그것이 본 회의든, 분과위든, 각종 청문회든,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소리를 내지르는 것과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 가지 팁을 준다면,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자신의 주장을 폐부 찌르듯 전달하는 것, 그것이 토론의 기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히 준비해야 하는데, 그래서 세 번째 부탁을 하려고 한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법안을 발의할 수 없고, 의결을 위한 토론을 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국회도서관은 그 나라 최고의 도서관이다. 공부하려고 마음 먹으면 지식 인프라가 아주 잘 되어 있는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공부하고 생각해야 새로운 언어, 새로운 어법, 새로운 대화법, 새로운 토론 기법을 개발해낼 수 있다. 청량하면서도 감동적인 연설을 할 수 있다.
네 번째 부탁은 좀 미안하지만 정신적인 것이다. 국회의원을 이번 ‘한 번만 할 각오’로 임기를 시작하기 바란다. ‘다음번’을 염두에 두면 다음번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정치의식은 날로 바뀌고 있다. 진인사대민의(盡人事待民意), 할 일을 다 하고 국민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5월 10일은 ‘유권자의 날’이다. 국회의원의 날도 대통령의 날도 없지만, 유권자의 날은 있다. 그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마지막 부탁은 제법 실용적인 것이다. 21대 국회 개원 전에 준비하고 가기 바란다. 5월 30일 개원까지 3주나 남았다. 차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준비하기 바란다. 앞으로 4년 동안 이런 시간을 가질 기회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자연히 많은 것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국민의 대표’가 된 모든 초선 의원님들께 당선을 축하드린다.
철학자·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