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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거리두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06 19:29:3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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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한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진행됐다. ‘거리 두기’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연극론’(1967)에서 희극의 효과인 카타르시스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자신과 문제, 감정과 사고, 현실과 이상 등의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는 현상”을 말한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재배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법으로 정해 놓은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포도나무를 심는 방법은 수확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포도 재배 시나 수확기에 어떤 기계를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포도나무는 보통 헥타르 당 3000그루에서 1만5000그루 정도 심는다.
이탈리아 바롤로 지역 포도밭.
프랑스 보르도지역은 재배 밀도가 높으며, 땅에서 복사되는 열을 받기 위해 낮은 철삿줄을 따라 포도가 열리도록 식재한다. 부르고뉴지역은 재배 밀도가 헥타르당 1만2000그루로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포도나무를 심는 지역이다. 두 지역 모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으면 이웃한 포도나무와 생존경쟁하며 뿌리가 땅속 깊이 더 내려가 다양한 토양의 영양분을 섭취하게 된다. 밀도가 높아질수록 포도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결과적으로 응집력이 생겨 더 좋은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는 토양이 비옥하거나 비료를 많이 주면 포도보다 잎과 줄기만 무성해진다. 척박한 토양, 이웃한 포도나무와의 생존경쟁, 부족한 물 등 스트레스를 받을 때 종족 보존 본능으로 포도에 영양분을 보내는 데 집중한다. 덜 익은 포도송이를 제거해 그루당 포도송이 수를 조절하는 그린 하비스트로 포도 품질을 높이기도 한다.

너무 가까워도 탈이고 너무 멀어도 문제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 두기’는 중요하다. 자신과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인간관계의 거리를 파악하고 적당한 거리를 지킨다면 서로 상처받지 않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정신적 외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주 자기 생각이나 기분에 휩싸여 행동하고, 감정 조절이 힘들어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우울해진다. 자신을 돌아보고 감정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곳은 내 삶과 맞지 않아, 아니, 당신 삶이 이곳에 안 맞는 거겠죠”(영화 ’어느 멋진 순간‘ 대사 중)

우리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대부분 ‘거리 두기’에 실패했을 때 일어난다. 너무 가까워지면 불편한 일이 생기고 너무 멀어지면 소외되는 인간관계. 불안하거나 쓸쓸하지 않은 나만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꽃이 피는 계절. 신선한 장미꽃 향 가득한 와인 한 잔 같이 마실 친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우아하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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