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에 놓인 프리랜서 예술가들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해 ‘앳 홈 갈라’ 공연을 선보였다. 이날 참여한 40여 명 스타 예술가가 각자 집에서 라이브 연주를 이어간 영상은 불과 하루 만에 100만 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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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직아악부 내에 구성된 이습회의 연습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극장 무대가 아닌 온라인에서 함께 연주하고, 각자 집에서 릴레이로 연주를 이어가거나 제작한 영상을 서비스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보려 노력한다. 이렇듯 아티스트를 비롯한 관객 모두 달라진 공연예술의 새로운 방식에 적응 중이다. 동서양 역사를 보면, 사회적 혼란과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음악 향유층이 바뀌고 음악 환경도 변화하면서 예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돼왔다.
서양 낭만주의 시대는 프랑스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적 혼란으로 경제적 질서가 변하면서 예술적 방향이 변화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귀족사회 붕괴로 인해, 19세기 중엽 이전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활동을 이어가던 음악문화에서 아티스트가 여러 나라로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오늘날 극장식 음악회와 같은 연주를 하는 형태로 변한다. 음악회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는 대중의 영향력이 커졌고, 엄청난 인기를 얻는 아티스트가 생겨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시대 왕립 음악기관으로 궁중 내 크고 작은 국가 행사음악과 전승을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이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됐다. 규모도 대폭 축소되면서 궁중음악 전승의 위기를 겪는다. 이즈음 서울에 경성방송국이 생기면서 이왕직아악부 소속 음악인들의 정기적인 출연으로 왕가 음악을 궁궐 밖 대중이 접할 수 있게 됐고, 여러 장 음반 취입도 이뤄졌다. 또한 이습회(履習會)를 조직해, 아악부원들의 개인 기량 향상을 위해 매월 공개 연주를 시행했다. 이때 합주 위주의 궁중음악에서 독주, 중주 음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점차 궁중음악이 무대예술로서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판소리 또한 19세기까지 양반의 후원으로 전성기를 맞았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양반의 후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조선성악연구회 같은 조직을 결성해 판소리 본고장인 남도의 음악인들을 서울로 규합해 서구 극장식 무대에서 배역을 나누어 창극을 공연하고, 공연단을 조직해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라디오 방송 활동과 유성기 음반을 통해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을 비롯한 당대 최고 판소리 명창의 소리를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판소리의 향유층이 양반에서 대중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삶은 어떠한가?
소리연구회 소리 숲 대표·음악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