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세상 곳곳을 바꾸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 얼마 전 50대 중·후반 부부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 늦둥이를 둔 한 전업주부 왈,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가족의 정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됐어요.” 순간 참석자 모두 한목소리로 “엥~.”
곰곰이 생각하면 그의 주장이 당연했다. 가족끼리 마주 보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는 것이다. 아들은 겨울 방학 이후 학교 가지 않고, 남편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오니, 2개월 넘게 거의 매일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고 했다.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가정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결혼 이후 가장 행복한 기간을 보내고 있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시절이 그렇나. 그날 그는 특이하고 유별난 사람이었다. 아니면 가식적이거나. 그를 제외한 대부분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투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했다. 특히 전업주부들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녁 먹고 들어갈게” 하던 남편의 문자 메시지와 학교 급식이 그립다는 것이다. 그에게 자칫 잘못하면 ‘왕따’ 당한다며 다른 자리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농담성 충고도 오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코로나 이혼’이 속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이런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트위터 등에는 “남편의 큰 목소리, 시끄러운 TV 소리, 코 고는 소리 등을 참아야 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남편은 나를 가정부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등의 글이 확산한다고 한다.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충분히 예상됐던 현상이다. 여기에다 근무시간 감소 등에 따른 수입 감소, 육아 피로 증가 등은 부부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꼰대’(?) 남편에게 또 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할 수밖에 없는 건 직장이나, 집이나 마찬가지다. 옛날 그 시절 가장의 모습은 하루빨리 버리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오래전 인터넷에 유행했던 ‘황혼이혼 방지 방법’이란 유머를 떠올려 봤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여라, 서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마라, 식사는 각자 알아서 챙겨 먹어라, 집안일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알아서 하라, 쪼잔하게 여자 돈 쓰는 데 간섭 마라, TV 채널은 여자에게 우선권을 줘라, 부부 모임을 함께 하지 마라 등등. 슬기로운 남편 생활이 절실한 요즘이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