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났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우려와 긴장 속에서도 차분하고 안정된 선거가 치러지면서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민주적 역량이 세계의 찬사를 받고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엉뚱한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시각장애인 김예지 씨를 돕는 안내견 조이의 국회 회의장 동반 출입 허용 여부였다.
사실 이 문제가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미 장애인복지법 제40조와 장애인 차별금지법 4조에서 ‘모든 대중교통 수단, 공공기관,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에서 안내견 출입을 제한·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했고, 국회 사무처도 조이의 동반 출입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제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김예지 당선인이 속한 보수 정당부터 여당과 진보 정당까지 조이의 동반 출입을 찬성해 논란이 될 사안도 아니다.
그럼에도 연일 이 문제에 언론과 SNS에서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이유가 뭘까? 우선 자극적인 언론사의 보도 행태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 보도가 가십거리로 지나가지 않고, SNS에서 정치적 공방과 논쟁거리로 부풀려져 다시 언론 보도로 확대재생산된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를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정치적으로 졸렬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저열한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김예지 당선인에게 조이는 지체장애인에게 필요한 휠체어나 지팡이와 마찬가지고, 눈이 나쁜 사람에게 필요한 안경과 같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그런 존재를 두고 특정 공간 출입 여부가 ‘검토의 대상’이 되고, 상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논쟁과 논의 속에 김예지라는 한 인간은 안 보였고, 그가 끌어안고 사는 시각장애 문제와 시각장애인 인권 나아가 260만 전체 장애인의 권리 신장과 교육, 사회적 연대와 공존에 대한 고민은 숨을 쉬지 못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이룬 성취와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느꼈을 우리 사회의 차별과 장벽에 대한 좌절과 고민도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장애인에 대해 그냥 배려하고, 보살피고, 챙겨줘야 할 짐스러운 존재라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조이의 거침없는 국회 출입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전체 장애인의 거침없는 사회 진출과 공존을 상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본질도 대안도 아니란 걸 우리는 빨리 알아야 한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과 사회 참여를 보조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장애인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결정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 점을 우리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김예지로 상징되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그것을 끌어낼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 방안, 또 다른 김예지가 나오게 할 정치·사회·문화적 제도 구축 방안에 맞춰져야 한다.
때마침 지난 20일은 40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장애인이 걷기 편한 길은 비장애인이 걷기에도 편한 길”이라며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고, 김예지 당선인도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환경)는 단순히 관련 설비를 시공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 배리어 프리는 배려가 아닌 의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인식 전환을 요청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번 논란으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장애인 인권에 관한 낮은 인식 수준을 자성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김예지 씨뿐 아니라 최혜영 이종성 지성호 장혜영 씨 등 장애인이거나 장애인 인권운동에 앞장선 인사도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장애인 인권을 더욱 높이고, 장애인의 사회 참여가 대폭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과 차별을 넘어 진정한 소통과 연대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우리 모두 관심과 지지를 보내자.
시민·부산 금정구 부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