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코로나19라는 영화 같은 감염병이 전 세계를 덮쳤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봄이 왔지만 오지 않은 것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난 중에도 정치의 시간은 흘렀고, 그렇게 난세의 인물을 자처한 300명의 새로운 동량이 등장했다.
코로나19와 함께 올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정치 태풍의 시기를 거친 당선인들의 소감은 한결같이 아래로 향했다.
누군가는 “초심! 열정! 사랑!”을 강조했고, 또 다른 당선인은 “섬기는 마음을 새기겠다”고 했다. “희망의 밀알이 되겠다”고 한 당선인도 있었고, “구민께 부끄럽지 않은 정치,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기도 했다. 오랜 세월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도 “이뻐서 잘나서 뽑아주신 것이 아닌 것을 잘 안다”고 고개를 숙였다.
짧게는 한 달여간, 길게는 1년 이상 오직 배지를 위해 수십 년 살아온 인생의 전부를 걸었고, 선택을 받았으니 어찌 시민에게 고맙지 않겠나. 그런데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수많은 당선인이 같은 길을 거쳐 갔고, 기시감 드는 시민에 대한 감사함으로 첫 국회 입성의 발을 디뎠다.
그렇게 같은 길을 거쳐 간 ‘올드 보이’들은 지금 일부는 소리소문 없이 잊혔고, 일부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돼 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당선인 시절 행보나 마음가짐은 지금의 당선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의 곤란한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시민의 선택은 선거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향했다. 특정 진영의 30년 독점 체제에서도 배지의 주인은 선거 때마다 3분의 1 이상이 바뀌었고, 4년 전에는 아예 양 진영의 경쟁체제를 이루는 데까지 갔다.
“바꿔야 한다”는 부산시민의 생각은 이번에는 유독 더했다. 역시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국회의원 6명을 그대로 공천하고, ‘공천 분란이 있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 그때 그 인물을 재등장시킨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압승이라는 결과와는 달리 부산에서는 쓴 패배를 맛봤다. 20대 국회에서 활동하는 미래통합당 12명의 부산 의원 중 7명도 자의든 타의든 국회의사당을 떠나야 한다.
부산 시민이 유독 변화에 민감해서일까. 수많은 시민이 여전히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애틋함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총선의 시간이 끝난 지금 진영을 가리지 않고 심판을 받은 인사들에 대한 사후 평가가 한창이다. “떨어질 만했다”는 감정적 의견도 있고, 내·외부를 향한 악다구니도 나온다. 다양한 패배의 원인이 쏟아지지만, 결국 민심과 멀어졌다는 진단으로 귀결된다. 심판 대상의 ‘변심’에 시민이 회초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다.
부산은 이제 어느 진영의 ‘텃밭’으로 보기 어렵다. 전국과는 다른 부산 선거의 결과를 놓고 지역주의로 돌아갔다거나, 특정 세력의 독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해석은 피상적이다. 이번 총선 부산 18곳의 선거구중 16곳에서 10%포인트 격차 안팎의 승부가 펼쳐졌다. 범여와 범야의 정당 지지율 차이 역시 10%포인트가 채 되지 않는다. 5% 시민이 생각을 달리하면 결과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시민에게 감사한 마음, 섬기겠다는 다짐은 다음 달 말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옅어질 수 있다. 200가지가 넘는 특권에 익숙해지면 국민의 소리, 시민의 다른 생각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총선이 끝난 얼마 후 충남의 한 당선인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유권자와 언쟁을 벌였다. 유권자가 공개한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그는 유권자의 의견 제시에 “당신이 대통령 하시죠”라고 비아냥댔고, 급기야 “×자식이네. 유권자가 유권자다워야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시민을 향해 “유권자다워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왼쪽 옷깃에 달게 될 배지의 수명도 다한다. 부산 당선인들이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