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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구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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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22 19:40:4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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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들 어리석게 산다. 아니, 나만 그런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말이다. 일 년에 고작 두어 번 먹어볼까 말까 하는 김밥에다 삶은 계란과 과자 몇 점, 무거운 사이다병을 륙색에 넣고 그 거룩한 학교 뒷산(학교가 기대는 뒷산이 반드시 있고 우리는 그 산의 정기를 받아 커가며 떠오르는 태양이 어쩌고 해서 길이 빛날 거라는 교가가 전형이었고 그걸 월요일 아침마다 목이 터져라 불렀다)에 오르지만 아까워서 겨우 김밥이나 몇 개 먹고는 고스란히 집으로 되가져오곤 했다. 동생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동생은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슬프게도 여태 내가 행한 선의의 증빙은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결국 삶은 계란은 짜부라지고 가루로 변한 과자에다 뜨뜻해진 사이다를 도로 가져올 거라면 무겁게 왜 가져갔냔 말이다. 소풍 가방을 꾸릴 때는 산에 가서 먹어야지 해 놓고는 차마 못 먹고 되가져오는 이런 멍청한 루틴을 중학교 마칠 때까지 반복했으니 할 말이 없다.

소풍이라고 하면 줄곧 구덕산에 간 기억뿐이다. 어떻게 정보가 새는지 ‘아이스 하드’ 장사와 거지가 늘 세트로 따라붙었다. 김밥을 제대로 먹기 어려울 정도로 거지의 구걸이 성화였다.

그리고 또 하나, 송충이가 사방에서 툭툭 쉴새 없이 떨어졌다. 거지와 송충이 탓에 가방 속에 도시락을 숨겨둔 채 살짝살짝 꺼내 먹어야 했다. 그만큼 송충이가 많았다.

그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기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모든 생명체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어울려 서로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조물주께서 창조하신 생명은 다 까닭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송충이? 이건 아니다.

우리가 선한 눈길로 바라보는 동물은 일단 다리 네 개까지이다. 그보다 더 많으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온몸에 털을 쭈뼛쭈뼛 세운 채 기기까지 한다면? 어린 시절 그 즐거운 소풍날, 소나무 밑 그늘 김밥 도시락 위에 여지없이 송충이가 툭툭 떨어졌다. 목덜미에 떨어진 송충이가 옷 안으로 파고들어 등짝을 타고 내리는 섬뜩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걸 납득할 수 있겠는가?

중학교 때는 종종 수업 대신 송충이를 잡으러 산에 올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 소나무마다 송충이 반 솔잎 반이었다. 나무젓가락으로 주워 담으면 금세 한 봉지가 찼다. 반나절 잡은 송충이가 작은 무덤을 이뤘고 체육 선생님이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분이 많은 생물에 불이 붙을 리가 없다. 몇 번이고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폈지만 타는 시늉만 하다 말았다. 일렁대는 연기 속에서 송충이들이 꿈틀댔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결연한 목소리로 이 송충이가 우리 산 소나무를 모두 결딴낼 거라 했다.

감당 못 할 만큼 많았던 송충이가 어느 날 사라졌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해서 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소나무 숲은 남았고 내 관심이 떠나 있는 동안 송충이는 자취를 감췄다. 생태계에서 어느 한 종이 극상에 이르고 나면 자연 사라지는데, 그런 것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연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위대한 힘이 생태계를 조종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도 어쩌면 이미 극상에 이른 것 아닌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난데없는 혼란에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드디어 우리가 허상처럼 쌓아왔던 자본 위주의 세상이 붕괴되는 조짐이라 여긴다. 자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억지로 도모해온 결과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가장 악랄한 바이러스였고 산업혁명 이래로 엄청 심하게 앓았다. 숙주인 지구가 망가지면 바이러스인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비로소 회복의 조짐을 보는가?

전 생명그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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