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이 걸렸다. 곧 끝나리라 믿었던 전염병 사태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외출은 자제하고 단체 활동은 금지되며 학생들의 개학도 늦추어졌다. 수업 일수는 속절없이 흐르고 급기야 교육부에서 비대면 수업을 권고하였다. 학생도 선생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주변의 선생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양 축으로 갈라졌다. 컴퓨터에 익숙한 축은 능란한 기술에 재치 있는 입담까지 겸비하여 볼거리 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대면 수업 시작도 전에 입소문부터 나서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 게 분명하다. 반면 아날로그 세대들은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유튜브라도 배워놓을 걸 하는 후회가 막심이다.

화면이야 교안으로 만들어왔으니까 어설픈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영상 제작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동료는 폭주하는 문의에 아예 휴대전화를 꺼두었다. 개인 지도를 받거나 단기 학원 수강을 듣는 이도 생겼다. 제작 방법을 터득하면 웹캠을 사고 삼각대를 구하고 마이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영상물에 등장할 모니터 주변 환경을 정리하여 직캠을 찍거나, 동료 선생끼리 서로 수업 장면을 녹화해주기도 한다. 목소리가 자신 없는 선생은 성우 목소리 변환 파일을 작동시켜 녹음을 마친다.

와중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문답법 강의를 즐기던 한 선생은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서 학생 대신 봉제 인형과의 자문자답 방식을 취했다. 휴대전화 동영상 셀프 강의를 촬영하던 분은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롱테이크 엔지가 났다며 투덜거리고, 한밤 녹화 중이던 어떤 선생은 아내의 코 고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재촬영했다는 일화까지 전한다. 학생들을 집중시키려고 강의 중간에 트로트를 불러서 찬반논란거리가 된 경우도 생겼고, 해당 링크가 퍼지면서 외부인의 장난 댓글이 달리는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우왕좌왕이다.

대학생들은 사이버 강의를 줄여서 ‘싸강’이라 부른다. 어느 밴드 대화방의 젊은 친구들이 나누는 이른바 ‘싸강 대참사’들이 웃프다.

비대면 첫 강의 날 서버 먹통 사건부터 좌우 반전 영상에 거울 모드 글자까지 천태만상이다. 수업 버튼을 켜자마자 “누워있는 학생 일어나세요”라며 천리안을 가진 선생과 초점 흐린 영상 강의에 블랙홀에 빨려들 것 같다는 반응이며 고양이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후기도 재미있다. 선생의 컴퓨터 조작 실수에 학생의 노련한 지도(?) 실화와 화상수업 때 마이크가 켜지지 않는 학생이 백지에 쓴 답을 흔들었다는 부분에서 폭소가 터진다.

나 역시 몇 시간 맡은 강의가 있어서 한 주 분량의 동영상 준비에 일주일 시간을 꼬박 바쳐야 했다. 정성에 비해 화면은 엉성하고 목소리는 투박한 사투리가 묻어나서 촌스럽기 그지없다. 정해진 분량에도 모자라니 급히 내용도 추가하였다. 들어보니 처음에 구상한 시나리오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원래 선생들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수업 도중 옆길로 새기가 다반사인데 ‘싸강’에도 영락없이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느라 버벅대기 일쑤였다. 인기 유튜버들의 노하우와 세련된 진행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일정이 촉박하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영상을 내 계정에 올려서 변환 파일을 다시 학교의 지정 링크에 업로드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혼자 힘으로 연결하는 것도 한계가 왔다.

백기를 들고 인터넷 방송하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복잡한 설명까지 알아듣지 못하니 거의 실신할 지경이다. 그때였다. 내 푸념에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말이 정신을 후려친다.

“낯선 것과도 친해 보세요.”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 바로 바꿔야 할 대상이고 싸워야 할 상대라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자판을 연결시킨다. 첫 영상이 업로드됐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자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이 옳았다.

‘싸강’은 또 한 차례 연장된다는 소식이다.

문학평론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