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제수영연맹(FINA)은 기존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아티스틱스위밍으로 개명했다. 팬들에게 종목 이미지를 개선하고 새 이름이 종목의 인기를 높일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작년 대한건설협회는 건설산업 종사자를 지칭할 때 흔히 사용됐던 ‘건설업자’라는 명칭을 ‘건설사업자’로 바꾸었다고 발표했다. 그간 ‘건설업자’라는 용어가 건설업을 비하하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개똥이 소똥이라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던 시대도 있었지만 최근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하지 않고 개명한다. 개명하는 이유야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풍기는 이미지가 부정적이거나 실제 수행하는 일에 비해 평가가 야박하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을 ‘스포츠지도사’라고 부른다. 스포츠지도사는 전문스포츠지도사 1·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1·2급, 건강운동관리사, 장애인스포츠지도사 1·2급, 유소년스포츠지도사, 노인스포츠지도사로 나누어져 있다. 스포츠지도사라는 명칭 전엔 ‘체육지도자’라 불렀다. 스포츠지도사라는 명칭을 보면 대충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순 있어도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 등을 심어 주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한마디로 팥소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랄까.
세계적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의 사명은 ‘우리는 기업과 정부의 성공을 돕는다’이다. 보험과 대출을 주로 하는 K생명의 사명은 ‘모든 사람이 미래의 역경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월마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부자들과 같은 제품을 구입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직원들에게 단지 월급 몇 푼 받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닌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줌으로써 눈부신 성과를 거두기 위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숨어 있다.
이와 달리 스포츠지도사라는 명칭은 사명감은커녕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기술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준다. 명칭을 통해 보람, 자부심 그리고 사명감 등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정작 페어플레이와 리스펙트 등 스포츠가치를 끼고 사는 사람은 거의 동네북 신세이다. 동네북 신세가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영혼 없는 명칭도 한몫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에 필자는 단순히 운동만 가르치는 사람으로 각인된 스포츠지도사라는 명칭을 버리고 운동 지도는 물론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 협력, 용기, 규칙준수 등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실천하도록 이끄는 의미까지 확장된 가칭 ‘스포츠가치실천지도자(스치자)’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더한 명칭 변경을 통해 스포츠인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직업의식을 한층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축구선수 출신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인간 존재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은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제껏 별이 구름(승리지상주의)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을 뿐이다.
카뮈는 스포츠는 승리 외에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과 도리를 가르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과 종교가 비틀거리고 양심마저 맥을 못 춘다. 스포츠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스포츠가치실천지도자가 솜털 같은 매개체(스포츠)를 이용하여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데 한 축을 담당한다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고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면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스포츠지도사라는 명칭은 시대정신은 물론 체육인의 빛깔과 향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하나의 몸짓(운동 지도)에만 매몰되어 있다. 스포츠인의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이름을 불러준다면 시대정신과 가치를 실천하고 앞장서는 화사한 꽃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동서대 체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