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의심환자가 보고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파죽지세로 지구촌을 감염시키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14일 현재 확진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사망자도 11만9483명으로 집계됐다.‘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도전’이라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온 세계사적 충격이 워낙 커서 이번 사태가 끝나면 코로나 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후(AC, After Corona)의 시대로 나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그럴싸한 이분법임에 틀림없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사상·제도·행동방식·정치체제에 크나큰 도전을 던지고 있다.
팬데믹을 대하는 세계 각국의 대응이 정치체제와 사상·국민성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 권위주의적 체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정보를 통제하며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철저한 상명하달에 따라 전격적인 도시 봉쇄와 개인 이동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개인의 자유(civil liberty)와 개인 책임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소중한 덕목이다 보니 연방정부가 권고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아직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방정부가 있을 정도이다. 물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는 하지만 ‘정부 책임론’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반면 한국은 국민의 강력한 요구와 빗발치는 질타가 정부를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어 적극적인 대응을 이끌어냈다. 국민 스스로도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데 묵시적 동의를 했다. 또한 철저한 자발적 위생관리가 코로나19를 이정도로나마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는 별도로 앞으로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 사태의 효율적 대응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한바탕 체제 우위 논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각종 제도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교육시스템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대학에 이어 초중고의 강의는 동영상 체제로 전환되었다.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있고, 법정 의무수업시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계는 그간 줄곧 반대해 왔던 원격진료를 일시나마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제도에의 반란을 경험하는 중이다.
세계화의 역습이다. 글로벌 시대에 사는 줄 알았는데 국경은 굳게 닫혔다. 서양에서는 코로나가 ‘중국발’이라며 아시아인에 자행하는 무차별적 야만이 목격되기도 한다. 글로벌 공급체인이 붕괴돼 미국에서는 화장지 품귀를 경험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26개 의료기기 공장이 멈추면 전 세계 의료는 마비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그간의 글로벌화의 방향이 경제적 이익과 편의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위기상황을 극복할 국제 공조에 소홀했다는 점을 코로나19가 상기시킨 셈이다.
이런 와중에도 승자는 등장한다. 아마존닷컴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전통적 소매업은 휴폐업 위기에 몰리고 있다. 캠퍼스조차 없는 미국의 신흥 미네르바대학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비웃듯 종래대로 수업을 진행 중이다. 세계 증시는 폭락 중인데 원격강의에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 기업의 주가는 폭등하고 있다. 구경제(Old Economy)에서 신경제(New Economy)로 빠르게 이동한 지혜로운 행동가들이 일구어낸 수확이다.
물론 오래된 가치를 새롭게 재확인시켜 준 것도 있다. 위기에서 꽃을 피운 인간애다. 삭막하기만한 사회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의료진의 희생도 그렇거니와, 소포 배달 아저씨께 남기는 따뜻한 손 글씨의 감사쪽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류애를 잘 확인시켜준다. 인류애야말로 우리가 계속 가지고 가야할 소중한 가치이다.
이번 위기에 빛을 발한 우리 사회의 장점은 극대화해 나가야 한다. 반면, 더는 유효하지 않는 사고의 틀과 제도는 과감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곧 구성될 새로운 국회에서 무엇보다 코로나 후(AC) 시대에 걸맞은 법적 제도적 정비 작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AC 시대를 이끌 혁신가들이 기를 펼 수 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글로벌 위기공조 시스템 구축을 주도해 나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코로나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