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는 원래 권력의 표상이었다. 권력자들은 권세와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초상화를 주문하곤 했다. 실물보다 미화해서 그려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15세기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레 프란체스카가 그린 공작 부부의 초상화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공작의 못생긴 매부리코는 더 강조돼 있고, 부인은 아픈 것처럼 창백하다. 측면이라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화가는 왜 이런 초상화를 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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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 공작과 부인의 초상, 1473~1475년. |
초상화가는 주문자의 마음을 간파해 화폭에 잘 구현해야 부와 성공을 얻을 수 있는 법. 먼저 그림 속 부부에 대해 알아보자. 남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 가장 성공한 용병 출신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다. 1422년 권력자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16세 때부터 용병으로 경력을 쌓아 19세 때 군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22세 때 우르비노의 군주가 됐고, 52세 때 용병의 공을 인정받아 로마 교황에게서 공작 칭호를 받았다.
300명 기사로 꾸려진 용병부대를 이끈 그는 한 번도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다. 몸값은 계속 올랐고, 용병으로 번 수익으로 우르비노 공국의 경제 기반을 닦았다. 문예 후원자로서 명성도 높았다. 많은 화가와 작가를 후원했고, 바티칸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종합도서관을 세웠다.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는 그가 용병으로 일한 밀라노의 공작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조카딸이다. 어릴 때부터 인문교육을 받아 지성과 덕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딸 6명을 낳은 뒤 1472년 후계자가 될 첫 아들을 낳았지만, 6개월 뒤 남편이 전장에 나간 사이 폐렴으로 숨졌다.
공작은 헌신적이었던 부인이 사망한 후 이 그림을 주문했다. 화가는 영웅적이면서도 슬픈 사연이 있는 공작 부부의 초상을 어떻게 그릴지 무척 고심했을 터다. 우선 부인 얼굴을 유난히 창백하게 표현한 건 아마도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작의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그가 평생 안락한 궁전이 아닌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았던 군인임을 상징한다. 콧등이 심하게 내려앉은 매부리코는 신체적 결점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장에서 다친 영광의 상처라 그대로 드러냈다. 반면, 마상시합 때 잃은 오른쪽 눈은 공작의 감추고 싶은 과거이자 결점이었다. 한쪽 눈을 감출 수 있는 옆면 초상은 화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뒤쪽 풍경은 공작이 지배했던 땅인데 의도적으로 작고 세밀하게 그려 부부 모습을 더 크게 부각하는 효과를 준다. 동시에 화려한 장신구와 의상의 섬세한 표현을 통해 모델의 고귀한 신분을 강조하고, 화가로서 자기 역량도 과감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공작은 그가 보여주고 싶고, 대를 이어 남기고 싶은 이미지대로 화폭에 영원히 새겨졌고, 프란체스카는 그런 권력자의 마음을 꿰뚫어 본 초상으로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