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낀 얼굴들이 일제히 하얗게 같은 방향을 향한다. 소리가 들리는 칸을 향해 길게 목을 뺀다. 처음엔 사람소리가 아닌 줄 알았다. 소리는 차에 치여 죽어가는 강아지의 울음소리같이 시작했다. 보름달을 향한 늑대 울음 같이 들린 것은 지하철이 서면역을 출발한 직후였다. 한순간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커진다. 사람 입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저 아래 붉은 내장에서부터 끌려 올라온 듯 거칠고 굵게 그르렁거리는 피투성이 소리가 칸에서 칸으로 전해진다. 오열일까. 비명일까. 욕설일까. 포효일까.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짐승소리 같다. 사람소리 같지 않지만 사람소리가 분명하다. 소리의 바탕은 높은 음역의 녹슨 쇳소리.

마스크 하나가 통로 건너 마스크를 향하며 으쓱 어깻짓을 던진다. 뭐지? 연이어 으쓱 어깻짓 답이 돌아온다. 글쎄. 가로로 젓는 고갯짓이 두 번 왕복으로 뒤따른다. 누군가의 마스크를 뚫고 올라온 손가락 하나가 머리 옆쪽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마주 보이는 마스크 위 찡그린 미간 옆 반짝이는 눈에 짧게 공포가 스치더니 불편이 채워진다. 소리가 더 거칠게 터져 나온다. 저러다 성대와 목구멍이 터질 것 같다. 소리에 밀려 혀가 빠져나올 것 같다. 심장이 튀어나오고, 가장 깊은 곳 내장이 딸려 나올 것 같다. 뭉크의 그림 ‘절규’에서 목소리가 빠져나온다면 저럴까.

그는 왜 불특정 다수 타인 사이에서 수치도 배려도 절제도 내려놓고 울부짖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고통이 그의 영혼을 할퀴고 물어뜯는 짐승을 입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절규가 계속된다. 숨이 끊어질 것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어딘가 부닥칠 것 같다. 전복돼 폭발할 것 같다. 제발 누가 좀 그를 멈추어 주었으면. 제발 누가 그를 잠시 안아주었으면. 지금은 사회적 거리의 시절, 감염성 강한 역병이 사람 사이 접촉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하철 방송이 흘러나온다. 보안관이 출동한 모양이다. 이윽고 비명소리가 사라진다. 지하철이 다시 덜컹대며 절규가 삼킨 운행 소리를 토해낸다. 바퀴와 레일의 규칙적 마찰음이 지하철을 채운다.

몇 달째 숨 막히는 날들이 계속된다. 적이 무지막지한 불안과 공포의 병사들을 끌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람과 도시와 국가를 점령했다. 이 막강한 적은 인간의 보건, 위생, 질병, 생사의 문제를 넘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문제에 복합적으로 절대적인 지배력을 과시한다. 불확실성, 감염, 확진, 음압, 공포, 봉쇄, 차단, 금지, 먹구름의 말이 세계 하늘을 뒤덮었다. 심리적 정서적 고통이 수시로 엄습한다. 경계와 불안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어 팽팽해진 신경은 피로하다. 전 지구적 멘털 붕괴( mental collapse), 멘붕 상태로 치닫는 집단적 우울의 늪.

백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종하는 적은 무차별적으로 몸을, 영혼을 감염시킨다. 이 적의 정체는 불안과 속성이 닮아있다. 보이지 않으면서 순식간에 몸과 영혼을 잠식한다. 단백질 껍질로 쌓인 불안정하고 미세한 적은 허약한 종교를 먼저 점령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려놓았다. 한 도시에서 먼저 창궐한 이 적은 자신의 가장 큰 능력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이간질임을 증명했다. 거리를 두고 외따로 존재해야 생존한다는 뼈아픈 소외와 격리 경험은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새겨질 것이다. 하여, 호모 사피엔스는 더욱 고독해질 것이다.

소리 없는 비명이 가득한 시대이다. 접촉이 금지된 세계의 딜레마는 새삼 깨닫게 한다. 악수와 허깅과 어깨 토닥임 같은 가벼운 스킨십이 얼마나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었던가. 세계는 지금 역병과 불안에 지친 마음을 안아주고 받아낼 따뜻한 가슴과 든든한 어깨가 필요하다. 늦은 밤 지하철의 절규는 지구의 절규일 것이다. 더는 참지 않겠다고 발광하듯 경고하는 지구의 목소리. 속도와 물량을 쫓아 철기문명의 쇠 우리(iron cage) 또는 쇠의 방에 갇힌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 인간의 잘못된 삶의 방식이 영혼을 공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경계경보 사이렌. 제발 멈추라고. 반성 없는 탐욕을 무한적재하고 질주하는 인간의 브레이크 없는 광기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