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대규모 전염병은 사회변혁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왔다. 물론 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다. 막대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고 국민 불안과 의욕 상실, 나아가 사회 병리 현상으로 축적돼 장기적으로 천문학적인 사회·경제적 손실을 불러왔다.
더구나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COVID-19) 감염증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했던 재난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글로벌 위기’로 다가온다. 홍수 지진 화재처럼 특정 지역에서 발생해 그 영향이 비교적 분명한 재난과 다른 것은 물론이고, 메르스나 신종플루 같은 최근의 전염병과 비교해도 전파 속도와 영향력에서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다.
처음 접하는 이 초월적 위기 앞에 우리 모습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첨단 의료기술을 가진 미국 등 선진국에서조차 치솟는 치사율, 임종하는 가족조차 없이 쓸쓸히 화장터로 향하는 사망자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상황에 역설적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의료진 그리고 사태 장기화로 직장이 해체되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시민, 우리 모두가 이 재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뿐인가. 확진자에 대한 원망과 비난은 또 다른 지역과 계층 간 갈등을 일으켰다. 그 흔했던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선 생경한 사회 모습, 월세조차 내지 못해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탄식, 코로나 사태의 책임론으로 표출된 종교적·정치적 갈등은 개인과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아 예측하기 어렵고,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어 지금까지의 재난관리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고 무력하게 한다. 지난 2개월 동안 국가적 노력으로 감염병이 차츰 통제된다는 희망을 가지려는 순간, 세계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위협은 우리를 다시 한번 주저앉게 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머지않아 코로나19는 극복될 것이다. 우리가 이 위기의 시간을 어떤 자세로 극복하느냐에 따라 코로나19가 남기는 발자취는 달라질 것이다. 그저 무서운 재앙으로만 기억될 것인지, 우리 사회가 성숙한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경험의 시간이 될 것인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희망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감염병 현장에서 물 한 모금 마음껏 마시지 못한 채 방역 장비에 갇혀 땀범벅의 나날을 보내는 의료인들, 감염 위험 따위는 아랑곳없이 피로와 싸우며 확진자 이송과 구급활동에 전념하는 소방관과 구급요원들, 자발적으로 월세를 깎으며 고통을 분담하는 건물주들, 내가 할 줄 아는 건 재봉틀질밖에 없다며 온종일 마스크를 만들어내는 자원봉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이미 코로나 이후의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할 일은 있다. 확진자나 격리자들을 병 그 자체만큼이나 괴롭히는 것은 사회적 소외다. 감염병에 대한 배타성과 편견은 2차적 상처라는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격리됐던 이들을 긍정적 메시지로 응원하고, 돌아온 이웃과 동료를 따뜻하게 맞아주자.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혼란한 시기에는 모두가 새로운 정보를 갈구하게 되고, 이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한 각종 루머는 더욱 난무할 수 있다. 지나친 정보검색과 뉴스에 대한 집착은 생활 피로를 증가시켜 오히려 정보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한다. 언론도 공포를 조장하거나 편견과 낙인을 가지게 하는 보도 대신, 어려운 재난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우리 국민의 모습을 찾아내어 용기와 힘을 보탤 수 있는 역할에 더욱 충실할 것을 기대한다.
위기를 통해 어떤 사회는 더 강해지고 성숙하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혼란과 갈등으로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가 코로나19 재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성장과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결시킨다면, 이 위기는 우리 사회가 쌓아온 역량과 장단점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를 ‘코로나 이후의 신인류’로 만들어줄 귀중한 학습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인제대 교수·부산시 국제안전도시 연구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