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이론이란 게 있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정립한 이론이다. 그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는 ‘코끼리’라는 프레임이 작동해서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프레임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옳고 그름은 다른 문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병에 물이 절반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사람은 “절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절반씩이나 남았네”라고 했다. 이때 객관적인 사실은 물이 절반 있는 것이지만, 프레임이 달라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차이가 생긴다.
그는 이 이론을 정치에 주로 적용했다. 전략적으로 짠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 진영이 제시된 틀을 반박하면 오히려 해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이론은 요즘 정치권에서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할 때 사용되는 유용한 도구다. 특히 선거 기술로 많이 활용된다. 그 프레임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지만, 일단 형성되면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인식된다.
이처럼 이 이론이 정치 영역에 적용되면 옳고 그름의 대결 양상을 띠게 된다. 정치는 이기고 짐의 헤게모니 싸움이니까. 우리처럼 1등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의 선거에서는 어떻겠나. 과정의 아름다움은 없고 결과만 존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틈은 없다. 프레임은 곧 전쟁의 무기가 된다. 대중을 세뇌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선거의 심판관은 대중이기에. 객관적인 사실도 종종 왜곡되거나, 감춰진다.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출혈 정도로 포장된다. 이때 프레임은 대중을 현혹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선전 선동의, 싸움의 도구일 뿐이다.
좀 많이 지루한 말을, 좀 길게 한 것은 역시 총선이 열흘 조금 더 앞으로 다가와서다. 이번 선거 역시 여야의 프레임 전쟁이 한창이다. 크게 ‘정권 안정론’ 대 ‘정권 심판론’으로 요약된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항상 나오는 레퍼토리다. 사람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지니까. 여당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생은 뒷전이고 국정 발목잡기만 한다”고 야당을 몰아세운다. 이에 야당은 “오만한 권력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고 맞선다. “민생은 피폐한데 진영의 기득권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라고 여당에 날을 세운다.
공방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격렬해질 것이다.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판세가 엇비슷하면 강도는 강해진다. 막말, 아니면 말고 식의 사생활 비방, 이에 따른 고소고발 등등. 사실 여부의 검증은 선거 뒤의 일이다. 지금은 유불리만 따진다. 선거는 전쟁이니까, 승자 독식이니까. 무조건 이기는 게 목표다. 비난은 잠시고 임기는 4년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공방 자체가 아니다. 대중을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당의 전략이 걱정이다. 폭로전도 프레임에 갇히면 진실처럼 여겨진다. 한 번 매몰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상대 진영의 주장은 거짓이고, 자기 진영의 주장은 참이 된다. 그때 팩트는 의미 없어진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진영의 득실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편이 갈린다. 지난해 하반기 ‘조국 사태’ 당시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이번 총선도 그런 프레임으로 치러질까 봐 두렵다.
그래서 다시 한번 되짚어보려 한다. 총선의 시대정신도 다시 확인해야겠다. 정치권이 제기하는 프레임에 최대한 갇히지 말자는 이야기다. 더 따뜻한 밥그릇을 어느 진영이 더 많이 채워줄 것인지만을 생각했으면 한다. 밥까지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이념은 없지 않나. 소수가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구든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권력을 잡아도 새로운 기득권층의 출현을 의미할 뿐이다. 격차 해소라는 사회 안전망을 만들 리더가 절실한 요즘이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 사태 때의 대처, 편법으로 정치를 희화화한 거대 양당의 비례정당 설립, 사천 논란 등 현안도 잊지 않고 표심에 반영하자. 이미지에 현혹된 선택은 금물이다. 이미지로 리더를 선택하면 안된다는 경험을 얻기 위해 대통령 탄핵이란 비싼 대가까지 치른 우리다.
흔히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한다. 유권자의 선택은 늘 현명했다. 가깝게는 제7회 지방선거가, 19대 대선이, 20대 총선이 그랬다. 그 선택에는 항상 나름의 뜻이 담겨 있었다. 시대에 뒤처진 오만한 진영에 대한 심판 정도는 될 듯하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였으면 한다. 짜인 프레임대로 선거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표심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