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시 ‘나의 가난은’을 읽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 통장은 없을 테니까 …”
이 시에는 행복과 고달픔의 감정이 함께 있다. 행복은 영속될 수 없다. 행복은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바뀐다. 심지어 행복한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가 다가올 것에 대한 염려가 함께 있다.
이 시는 낮과 밤의 시간이 하루를 완성하는 것처럼 행복의 빛과 고달픔의 어둠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다른 시 ‘편지’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라고 시인은 고백했는데, 포만과 결핍이 서로 뒤바뀌는 것이 우리 삶의 자화상일 것이다. 건강한 때와 질병의 때도 우리 삶의 두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사람이 큰 고통에 빠지면서 면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 개인의 면역뿐 아니라 집단 면역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집단 면역은 보다 확장된 면역의 개념이다. 하나의 집단 내부에서 면역을 지닌 개체가 늘어나면 면역력이 약한 개체가 감염될 확률 또한 떨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감염의 확산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게 위해서는 집단 면역, 즉 공동체 면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면역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는 기회가 있었는데, 율라 비스가 쓴 ‘면역에 대하여’도 심층적으로 면역의 문제를 다루는 서적이었다. 우리의 몸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신종 질병의 등장과 백신 접종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생각된 대목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서로의 환경”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각별했다.
“정원의 은유를 우리의 사회적 몸으로까지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정원 속의 정원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정원은 에덴이 아니고, 안락한 장미 정원도 아니다. 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 ‘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 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야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우리는 단독적인 개인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영향 관계에 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고달픔은 나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그릇되게 되면 다른 것들도 그릇되게 된다. 연기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비방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된다.
우리가 종교적인 차원의 자아가 될 때 나의 행복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에는 우리가 하나의 유기적 생명 공동체에 살며, 또 선의로써 서로를 돕는 조력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도 서점가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을 1947년 발표했다. 도시 오랑을 휩쓴 전염병 공포에 직면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그러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실존적 조건,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다고 썼다. 즉 언제든지 페스트균은 다시 공동체 내부에 창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페스트균은 집단 감염을 일으키는 균 그 자체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페스트균의 함의는 우리를 공포와 불행의 수렁에 몰아넣는 여러 가지의 것, 즉 전쟁과 폭력과 부조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도 한 개인은 사회적인 몸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 고통에 빠질 수 있는 이 공동체는 우리가 직접 가꾸어야 할 하나의 정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병고를 이겨내는 기도로 불교에서는 ‘약사여래경’을 독송한다. ‘약사여래경’의 발원문은 온 생명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기도문이다.
이 경에서는 인간이 숨을 쉬면서 현재를 사는 일이 햇빛, 공기, 물, 흙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생명의 청정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구촌의 생명들을 위협하는 질병은 이 생명세계의 청정함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 청정함의 훼손은 과도한 탐욕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모든 존재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인종이나 종교, 국경, 신분 등을 초월해서 질병으로부터 생명들을 지켜내는 일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 경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함께 발원하기도 한다. ‘약사여래경’뿐만 아니라 불교의 ‘보배경’도 질병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을 염원하는 기도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모든 생명존재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종교적 기도는 또한 우리 모두가 형제이며 자매라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누구에게나 본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견고하게 믿는 데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