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드래곤’이라는 소설이 있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 유치함과 특유의 문체(?)로 웹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다소 충격적인 맞춤법을 구사하는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크아아아아/ 투명드래곤은 엄청짱쎄서 드래곤중에서 최강이엇따/ 신이나 마족도 이겼따 다덤벼도 이겼따/ 새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따.”

2000년대 초에 나온 이 작품(?)은 아직까지 회자되며 그동안 재미있는 패러디를 수없이 낳았다. 그중 하나가 몇 년 전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개강드래곤’이다. ‘개강한’(‘아주 강한’이라는 뜻) 개강드래곤이 나타나 방학을 없애고 과제, F학점, 학사경고를 준다는 내용인데 원작의 코믹함을 살리고 공감되는 소재를 쓴 덕에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개강드래곤’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럼 실제 개강은 얼마나 강할까? 아주 강하다, 나를 울게 할 만큼. 부끄러운 얘기를 해보자면 개강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저녁, 여자친구를 만났다. 우리 학과는 이때까지도 개강 연기 소식이 없었기에 정말 내일 개강을 하나보다 싶었고, 슬퍼졌다. 의학과는 사회 초년생보다 바쁘다 보니 개강하면 더는 맘 편히 같이 있기는 힘들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울었다. 그때(오후 8시 반이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휴대전화로 ‘개강 연기’ 공지가 왔고, 울고 있다가 그걸 본 우리는, 머쓱해졌다. 어쨌든 개강이 연기됐고, 코로나로 자주는 못 봤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며 함께 여유를 즐겼다.

올해도 작년에도 여자친구와 있을 때 자주 들은 노래가 있다. ‘Friday I’m in love’이다. 지난해 의학과는 매주 금요일 시험을 쳤고, 시험이 끝난 금요일 저녁, 지친 몸을 눕히며 쉬거나 여유를 틈타 여자친구와 만날 때 이 노래를 듣곤 했다. 한 주간의 일이 끝나고 돌아온 금요일 저녁을 생각하며 독자 여러분도 들어보길 추천한다.

이 곡을 부른 밴드 더 큐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얼터너티브 록이다. 여기서 얼터너티브란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대안(alternative)을 추구하는 태도로, 이러한 뮤지션으로는 프랭크 자파, 너바나, 이기 팝, 벨벳 언더그라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등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도 이 ‘얼터너티브’라고 생각한다.

개강이 연기된 동안 나와 친구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해봤다. 나는 음악 공부를 했고, 전공과 상관없이 양자역학이나 우주론, 철학 책을 읽은 친구들도 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요리에 도전해보고, 에세이집을 사 읽거나, 그림 공부를 하고 시를 읽고 대본을 써본 친구들도 있었다. 외출을 못 하게 되니 재미없는 건배사를 하러 회식에 갈 일이 없어 오랜만에 아무런 방해 없이 편히 쉬어 좋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소소한 펑크(Punk)이자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짧은 기간에 이뤄진 개개인의 작은 성취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그 이상을 해낼 여유나 기회를 가진 적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며 간절히 바라오던 여유가,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아니었어도 주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찌됐든,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더 좋아할 수 있을지 확인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해보려 했고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을 찾아보려 했다.

비록 우리 주변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바쁘게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간 동안 해낸 것을 기억하며 자신감을 갖자. 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선 주변에 휩쓸리지 않을 필요도 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주변 시선은 내려놓고, 심지어 문법과 맞춤법도 무시한 채 웃통을 벗고 무대에 오른 로커처럼 (자기 이름을 넣어) 이렇게 외쳐보자.

“크아아아아, 엄청짱쎈 최강의 ○○드래곤이 울부짓었따 출근과 개강이 덤벼도 다이겻따 ○○드래곤은 새상에서 하나였다 그리고 걔가 울부짖는다!”

동아대 의학과 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