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를 일본의 민중시로 발전시킨 마츠오 바쇼오(1644~1694)의 작품 중에는 봄꽃에 관한 것이 많다. ‘벚꽃 구름/종소리는 우에노인가/아사쿠사인가’. 활짝 핀 새하얀 벚꽃은 구름 같다. 그런 벚꽃을 보고 있자니, 두둥실 구름에 실려 떠다니는 듯하다. 종소리가 나는 곳이 우에노인지 아사쿠사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지나던 배도/멈출 때 있어라/해변의 복사꽃’. 해변의 복사꽃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지나던 배가 멈출까. 바쇼오의 지극한 봄꽃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바쇼오는 단순히 상춘의 서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꽃에 들뜬 세상/내 술은 허옇고/밥은 거멓다’. 그는 이 시에 ‘근심 속에 있어야 진정한 술맛을 알고, 가난해야 돈의 소중함을 안다’는 서문을 붙였다.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쁨과 슬픔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빚어내는 게 인생이라는 통찰이다. 그 통찰은 세상 만사와 만물은 늘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철학이다. 1684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진 방랑을 통해 터득한 불변의 진리다. 그는 “해와 달은 백년과객이며, 나그네길이 내 집”이라고도 했다. 바쇼오는 그 깨달음을 세상에서 가장 짧은 5·7·5 음수율의 17자 정형시(하이쿠)로 표현했다. ‘방랑에 병들어/꿈은 마른 들판에/헤매고 돈다’. 그는 방랑시인답게 마지막까지 무상의 화두를 놓지 않았다.
바쇼오가 타계한 지 320여 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또다시 유례 없는 무상을 경험하고 있다. 올림픽 연기 결정이 난 지난 24일 전후로 생활 풍경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춘분 연휴를 맞았던 지난 20~22일 유명 공원들은 벚꽃놀이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예정대로 올림픽을 개최하길 바랐던 아베 총리도 “지자체 및 행사 주최자들이 탄력적으로 대응하라”며 느슨하게 지시했다. 그랬던 일본 정부가 이번 주말을 앞두곤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듭 강조한다. 도시 봉쇄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다.
일본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우리 또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온천천을 비롯한 부산 도심에 본격적으로 벚꽃이 피기 시작한 건 이번 주 들어서였다. 산기슭에 머물던 진달래가 정상을 향해 등정에 나선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들 봄꽃을 주말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26, 27일 전국적으로 봄비가 예고돼 있어서다. 남해안의 경우 최대 150㎜까지 쏟아질 전망이다. 미처 다 피기도 전에 지는 꽃을 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절이 참 덧없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