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멘델스존 ‘무언가’중 봄노래, 요한 스트라우스 ‘봄의 소리 왈츠’, 신딩 ‘봄의 속삭임’, 우리 가곡 ‘망향’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흥렬 ‘꽃구름 속에’(박두진 작시)…. 이맘때면 듣고 또 들을 만큼 좋아하는 노래지만, 이번 봄은 가슴에 잘 와닿지 않는다. 순백 목련꽃이 봄을 부르고 살구꽃 복사꽃이 봄 향기를 뽐내며 지천에 봄 기운이 피어나지만 세상이 전염병으로 어수선하니 모든 게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올봄처럼 맞아 떨어진 적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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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
고도 산업사회와 인간 욕망이 어디까지 갈지, 암울하다. 우울하니 음악도 잘 들리지는 않지만, 요즈음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가끔 들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첼로 하나로 연주하는 단순한 선율이지만, 명상의 세계로 젖어들기는 딱이다. 젊은 시절부터 고전음악을 좋아했고, FM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며 많은 음반을 접했지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직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첼로 선율 하나 하나가 마음의 준비 없이는 제대로 가슴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밤일 때 이 곡을 듣게 된다. 하루 중 가장 음악을 차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조용한 시간에는 다른 이의 연주보다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에 심취하곤 한다. 나이가 든 탓일까? 부드럽고 우아하며 편안한 연주보다는 담백하면서도 심오한 느낌을 주는 연주가 가슴에 더 잘 스민다.
파블로 카잘스는 1889년 어느 날 스페인 바르셀로나 헌책방에서 먼지에 덮인 낡은 악보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이다. 그는 이때부터 이 악보를 연구하고 또 끊임없이 연주해 이 곡이 세상에 나와 빛을 낼 수 있도록 했고, 일생 매일 일과처럼 하루 한 번씩은 연주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음악 감상용으로 작곡했다기보다 첼로 연주자의 연습곡으로 작곡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이 곡은 선율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그저 흘러가게 해두고 듣는 것이 감상자에게는 좋을 듯하다. 요즘 듣는 음반은 카잘스가 1938년 녹음한 것이지만, 2018년 워너 뮤직에서 복간한 음반이다. 예전에 듣던 EMI 음반보다는 음질 면에서 훨씬 좋으니 첼로 선율도 귀에 잘 들어온다. 오늘은 바흐 무반주 첼로 협주곡 중 5번을 틀고, 시 구절을 들여다본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다.
‘가슴이 순수한 그대여 / 눈동자가 투명한 그대여 / 새봄이 올 때마다 더욱 눈부신 그대여 / 춤추고 사랑하며 삶을 살다 / 그대 스스로 빛이 되어라 !’ 필하모니 대표·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