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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쟁의 얼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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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3-17 19:19:3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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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면 가려진 진실은 보지 못한다. 반대로 보고 싶은 것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이 그림 속 여성은 얼굴이 꽃에 가려져 있다. 아름다운 차림새만큼 미녀일까? 웃고 있을까? 감춰져 있으니 더 궁금하다. 화가는 왜 하필 꽃으로 그녀 얼굴을 가려버린 걸까?

르네 마그리트의 ‘대전’(大戰·The Great War) 1964년.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지만, 그 스스로는 화가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음악이나 글처럼 회화를 통해 자기 사고를 타인과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초현실적 이미지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을 보며 화가의 생각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그는 익숙한 두 개 이미지를 합성해 완전히 낯선 것으로 만든 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붙이는 걸로 유명한데,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푸른색 꽃다발은 여자의 손이 아니라 얼굴 앞에 그려져 있다. 뉴턴의 중력법칙을 완전히 비웃기라도 하듯 꽃다발은 공중 부양 상태다. 과학적 설명이나 논리적 해석이 불가한 이미지다. 푸른 바다와 하늘, 우아한 드레스와 모자, 양산과 꽃다발, 핸드백 등 그림에 등장하는 그 어떤 것도 전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작가는 왜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대전(大戰)’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마크리트는 1,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세대로 이 그림 역시 그때 경험을 떠올리며 그렸다. 그는 전쟁이 자신의 삶과 사고, 예술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독일 점령은 내 예술의 전환점이다. 전쟁 전에 내 작품은 불안을 표현했지만, 전쟁 경험으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매력을 표현하는 것임을 배웠다. 나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고 내 작품은 그 세계에 대한 반격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끔찍한 시절에 대한 지독한 역설이다. 모든 전쟁의 명분은 이 그림 속 여인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여인의 우아한 백색 드레스는 미화된 전쟁의 목적을, 고급스러운 챙 모자와 양산은 화려하게 포장된 전쟁의 프로파간다를 상징하는지 모른다. 핸드백 속엔 시한폭탄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얼굴을 가린 수국은?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이다. 전시 상황은 변덕스러운 사람의 진심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렵다.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적은 강한 적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적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적 앞에선 어떤 전략도 세우기가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두렵다. 얼굴이 가려져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여인, 지금 어떤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너무도 매혹적이지만 다가갈 수 없는 두려운 존재다. 두려움, 공포, 예측할 수 없는 결말. 전쟁의 얼굴은 그런 것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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