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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칼럼]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12 19:37:2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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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한국의 현실이 참담하게 되었다. 병의 확산세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이로 인한 경제파국도 심각하다. 한국이 암울한 잿빛에 갇힌 것 같다.

그림 서상균
하지만 이번 사태로 한국이 더 강하고 멋진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나타난, 우리 국민이 의연하고 침착하며 슬기롭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이런 예측을 해볼 수 있다. 코로나의 도전에 응전하는 한국인의 멋들어진 모습들이 보여서다.

한국은 지구 어느 국가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기적의 역사를 창조해왔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기적이 첫 번째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 위에서 불과 60년 만에 글로벌 톱10국가가 되었다. 정치시스템의 기적이 그다음이다. 한반도는 5000년 대부분을 전제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았다. 일제 때는 강점 정치를 그리고 해방 후에는 군부 정치를 경험했다. 이후 30년 동안 민주화를 위한 시련기를 겪은 후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국가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문화 기적이다. 한국은 글로벌 수준에서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며 살지 못했다. 그저 다른 나라의 문화가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의 아이돌 가수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전 세계 청소년이 이들을 신으로 우상화하는 진기한 일이 벌어졌다, 급기야 BTS라는 아이돌 그룹은 아미(army)라는 수호 군대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는 제집 앞마당이다. 아이돌로 인해 한국의 자랑인 한글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미국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받으면서다. 이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아이돌에 의한 청소년 중심의 문화 기적이 어른들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영화는 성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아이돌과 봉준호에 의한 문화 기적은 제한적이다. 소수 문화 엘리트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것을 반전시키고 있다. 문화란 창조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국민이 살아가는 모습도 문화다. 코로나 사태는 한국인에겐 엄청난 도전이다. 역사 속에서 유사한 역병 기록을 찾아볼 수 있지만, 현대를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메르스 사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국민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 국민 수준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은 민주국가다. 이런 국가가 가진 약점이 하나 있다. 한계 상황의 국난에 부딪히면 우왕좌왕하다 순식간에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전제국가는 힘으로 밀어붙여서라도 국난을 수습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부도 속수무책이 된다. 이때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이것의 여부에 따라 국민의 문화 수준이 드러난다. 이게 한국에서 보였다. 미국 ABC방송의 이안 팬넬(Ian Pannell)이라는 기자가 대구 시민이 코로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도했다. 한마디로 “놀랍다”다. 그의 말을 옮기면 대구는 정신적 공황(panic)에 빠지지도 않았고 시민폭동(rioting)도 없는 평온 그 자체라는 것이다. 길이 한산해서 그렇지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재기도 없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을 섰다가 못 사면 투덜투덜은 하지만 그저 묵묵히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구만 그랬을까? 전국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이 기자의 눈에는 이런 지경까지 빠지면 국민 패닉과 폭동이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전혀 이런 조짐이 없다는 거다. 여기에 전국 의료인이 봉사하겠다고 대구에 집결하고 있다. 대구는 시 전체가 스스로 자발적인 사회적 격리에 들어갔다. 코로나 진단키트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빠른 속도로 만들고 가장 많은 양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은 하루 1만 명씩 진단할 수 있는 생산과 의료시스템을 갖추었는데 도대체 미국은 뭐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엄청난 힘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인이 보여주고 있다. 이게 품격 있는 문화 아닌가? 이게 우리가 단시간 내에 이루어 놓은 기적 아닌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기적을 불러일으킬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기업들은 생산직을 제외하고 빠른 속도로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한국 기업들은 면전에서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래에서는 얼굴 보지 않고도 기업경영이 가능한 새로운 근무 형태를 필요로 한다. 재택근무가 그중 하나다. 이것이 확산되면 경력단절 여성 인력 활용, 유연근무제, 일과 가정 양립 등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학교육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학생을 만날 수 없으니 인터넷을 통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 역시 미래 교육의 하나다. 학생은 인터넷을 통해 예습하고 만남 수업에서는 질문하는 플립드 러닝(fliped learning)이 가능해서다.

산업의 변화도 예상해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부품과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이번 사태가 보여주었다.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와이어링 하니스라 불리는 임가공 부품의 부족 하나로 공장 전체를 멈춰 세워야 했다. 해외로 나간 공장을 다시 들여와야 하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이 기회에 정부도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또 한 번 제조업 르네상스의 기적을 열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피해만 준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고, 새로운 변화 가능성도 주었다. 그러면서 숙제도 내주었다. 코로나 사태에서 찬물을 끼얹고 엇박자를 내며 억장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것도 숙제다. 정치권과 정부의 역량을 늘리는 것도 숙제다.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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