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가 있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게다가 남편이 주말마다 사회인야구를 한다며 집을 비우는 통에 더더구나 야구를 싫어하는 아내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본방을 사수한, 그리고 옆에서 훈수를 두는 남편과 같이 봐야 더 감칠맛이 난다는 드라마, ‘스토브리그’다.
이 드라마는 프로야구 만년 꼴찌 팀에 새로운 단장이 부임하면서 비합리적 구단 시스템과 선수들 간의 불화 그리고 인맥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는 조직문화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탄탄한 서사적 구성을 갖추며 일반 시청자뿐만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까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현 10개의 프로구단과 비교하며 어느 팀을 모델로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화젯거리를 낳으며,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연결 지으려는 감정이입을 통해 일종의 팬덤(fandom) 현상까지 몰고 오기도 했다.
흔히 스포츠 드라마라 하면 선수들의 역경을 감동적으로 그리면서 상투적인 러브라인을 구축하는 전개로 인해 식상한 면이 적지 않은데, 이 드라마는 예고 영상에서부터 ‘야구를 소재로 하지만 야구 드라마가 아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구단 프런트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문제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그들 간의 갈등과 화해를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치환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다.
또한 현 프로야구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의 구단 매각, 연봉 삭감, 선수들의 약물복용과 원정도박, 입단 스카우트 비리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이런 분위기에 직면한 단장이 자신만의 철학과 소신으로 구단을 운영하려는 캐릭터는 꽤나 신선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야구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세이버매트릭스를 활용하는 장면이나 대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야구용어를 설명하는 자막을 보면서, 작가가 대본을 위해 실제 구단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18명의 전문가에게서 조언과 의견을 받았다는 것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스토브리그라고 하면 정규 시즌이 끝난 겨울철 각 프로구단이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에 나서는 시기로 일컬어지는데, 원래의 의미는 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선수들의 소식 등을 이야기하면서 흥분하는 모습이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1982년, 비록 한 독재자의 불온한 의도로부터 출발했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이 기억난다. 지역 연고제 탓에 으레 롯데를 응원하며 매 경기를 놓치지 않고 챙겨보고, 또 선수 개개인의 신상과 성적을 줄줄이 꿰찼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른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과는 서로의 팀을 위해 무수한 설전을 벌였고, 그런 과정에서 경기를 보는 재미는 배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때의 모습이 구단과 선수 간의 지루한 연봉협상과 몰상식한 트레이드로 팬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즘과 다른 스토브리그의 진정한 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야구는 선수가 하고 그 선수를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는 구단이지만, 관중 없는 경기는 상상할 수 없다. 구단과 선수의 이익에 맞춰진 협상으로 시즌이 일방향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혼재된 목소리와 다층적인 의견도 충분히 녹아드는 그런 스토브리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그렇게 시작되는 정규리그라야 할 때, 매 경기 관중들이 만들어내는 추임새와 그 담론들로 보다 상생하는 건강한 야구 문화가 재생산되지 않을까?
겨울을 겨울답게 보낼 때 봄은 아름답다. 지금 전국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서로를 멀리하며,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하루빨리 서로가 마음 놓고 손을 맞잡으며 얘기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라는 것처럼 선수와 구단, 그리고 팬들 모두 각자의 마스크를 벗고 새봄을 맞을 준비를 했으면 한다.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아마추어 야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