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부산 서구청을 취재하면서 가끔 아미동 동사무소를 방문했다. 가난한 동네지만 꼬불꼬불 가파른 골목길과 다닥다닥 붙은 담벼락 사이로 종종 미담이 새어나왔다. 마침 동장은 “이곳이 고향인 가수가 한분 있는데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그 가수는 이후 모교 동창회장까지 맡아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수학여행 경비나 급식비, 장학금 지원을 이어갔다. ‘꽃밭에서’를 부른 정훈희 씨 이야기다. 부산 회동동과 만덕동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스타로 자라난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지민과 정국의 고향 사랑 역시 조용하면서도 꾸준하다.
세계 1위 부자인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올 초 산불 피해를 입은 호주에 100만 호주달러(약 8억 원) 기부 의사를 밝히자 뜻하지 않은 비판이 쏟아졌다. 자산이 1167억 달러(약 135조 원)나 되면서 너무 인색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자신의 지분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으나 이 기부가 실은 유한책임회사 설립이어서 “돈을 이 호주머니에서 저 호주머니로 옮긴 것일 뿐”(뉴욕타임스)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삼성 특검’ 당시 1조 원대 사재 출연을 약속했던 이건희 회장이나, BBK 관련 동영상으로 위기를 맞자 선거 직전 전 재산 사회 환원을 선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끝내 칭송은 듣지 못했다.
마케팅학에서 기업의 기부 활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했더니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조직의 위기 빈도가 잦을수록 기부금이 많았다. 기업 기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선 위기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기부, 장기간의 꾸준한 기부, 돈보다 시간을 기부하는 행위에는 호의적인 반면 글로벌 기업의 기부나 위기 직후에 이뤄지는 기부에 대해서는 시니컬했다. 기부의 진정성에 관한 한 대중은 이렇게 눈치가 빠르다.
신천지예수교가 최근 120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놓았으나 모금회 측이 반환했다. 전국을 코로나 패닉으로 몰아넣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종교단체가 행정·수사기관의 강제 조사가 임박하자 거액을 내미는 모양새에 여론도 호의적이진 않다. 개인적으로 모금회에서 이 돈을 받아 안 그래도 물자가 부족한 대구 경북에 집중 투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감동의 크기만 놓고 본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어려운 자영업자 물건 사주기에 동참하는 시민, 통장을 깨서 모금회에 들고 오는 기초수급자를 능가하는 기부가 있을까 싶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