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난기본소득,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지난 1일 게재한 ‘재난의 정치경제학’ 첫 번째 칼럼이 나가고 난 뒤 ‘재난은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시킨다’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에 많은 분이 공감을 해주었다.
3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2주간의 ‘잠시 멈춤’ 캠페인을 제안했고, 인접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즉시 동참의사를 밝혔다. 핵심은 외출이나 타인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전화 인터넷 SNS로 주로 소통하며, 개인 위생수칙을 잘 지키자는 것이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달리는 자는 찬찬히 살필 수가 없는 법이다. 코로나19 방역만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처한 총체적 위기를 다시 점검하고 살피는 소중한 시간이 꼭 필요한 지금이다.
먼저 이번 재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해 신속하고 다양한 선제적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재난기본소득’이 있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지난 1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난기본소득 50만 원을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을 넣었다. 이 대표는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000만 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난기본소득 50만 원씩을 1000만 명에 주면 5조, 2000만 명에 주면 10조 원으로 ‘사람을 살리는 예산’으로 추경을 확보할 것을 강조했다. 4일 오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585899)에 5300여 명의 동참자가 생겼다. 나도 5169번째로 동의 서명을 했다. 청원기간은 이달 31일까지인데 꼭 20 만 명을 넘겨 청와대가 답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언론도 ‘이재웅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제안 검토해볼 만하다(서울신문, 3월 2일)’는 제목의 사설, ‘한번 해보자, 코로나 기본소득제’(경향신문 김민아칼럼, 3월 3일)라는 제목의 칼럼 등으로 호응하고 있다. 요 며칠새 여야 정치권도 ‘재난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전보다 진전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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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웅 쏘카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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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주장은 2012년 대선 때 청소 노동자 출신의 무소속 김순자 후보가 내건 월 33만 원의 ‘국민기본소득제’가 최초의 정치공약일 것이다. 지난 1월 기본소득당이 21대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후위기와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정책으로 매월 60만 원의 기본소득 제공과 공공·사회 서비스 강화를 제시했으며, 그 외 일부 소수정당에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기본소득제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대만계 기업가 앤드류 양(44) 후보가 비록 지난 2월 중도 사퇴를 표명했지만 선거 유세 초반에 “18세 이상 모든 성인 미국인에게 매달 1000달러(약 118만 원)의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최대공약으로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머니투데이, 2월 12일)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기본소득의 보편적 성격과 혼동이 돼 개념상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하는데 2004년 독일의 기업인 괴츠 W. 베르너가 처음 주창했다. 베르너의 기본소득 구상은 독일 시민 모두에게 매월 1500유로(약 210만 원)를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가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뒤 농민·청년·사회적 약자 등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제한적, 조건부)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제안이나 관련 실험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현재 거론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은 일종의 ‘조건부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 문제는 2011년 초중학교 무상급식문제를 놓고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하던 논쟁과 닮았다.
세계 각국에선 기본소득 도입과 관련해 지자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효과에 관한 실험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톡턴(Stockton)시는 2019년 2월부터 주민들에게 월 500달러(약 60만 원)를 지급함으로써 소득불안을 해소하고 삶을 바꾸고자 하는 ‘310만 달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재원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100만 달러 기부도 포함돼 있다. 스톡턴의 평균 중위소득 4만6033달러(약 5500만 원) 이하 가구의 무작위 표본을 통해 125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18개월간 직불카드로 매월 500달러를 지급한다. 25명의 시민전문가가 이러한 과정을 분석해 대중과 공유하기로 했다. 최종보고서는 2021년 7월에 나올 예정이다.(Castro Baker and Stacia Martin-West, Public Policy, Can Universal Basic Income Work?, 2020.1.17)
이탈리아 해안도시 리보르노 필리코 노가린(Livorno Filippo Nogarin)시는 2016년 6월 극빈가구 100세대에게 임대료와 식량 등 기본비용 충당을 위해 월 537달러(약 64만 원)를 주는 조건부 기본소득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실업급여와 최저임금법의 부족으로 인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극빈가정에 큰 위안이 된다는 평을 받고 있다.(Business Insider: Basic income experiments in 2017)
재난기본소득제 도입을 두고 다양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재난기본소득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궁즉통(穹卽通)’이라는 말처럼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공동체성의 회복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 배려로부터 시작하기에 우선 지원이 필요한 여러 방안들을 찾고 실현 가능한 구체적 방법들을 위한 모두의 지혜 모으기가 필요하다.
재난기본소득을 제도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재난기본소득제의 도입의 필요성과 절박함을 정치권이 인정하고, 여야가 공히 당내는 물론 국회 내에 ‘재난기본소득제 도입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냐 선별적 기본소득이냐에 대한 공론화를 이끌어 내고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것을 이번 21대 총선의 주요 이슈로 삼고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면 좋겠다.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소수정당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홍콩 정부는 지난 1일 710억홍콩달러(약 11조 원)를 투입해 18세 이상 약 700만 명의 영주권자에게 1만 홍콩달러(약 155만 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뉴스1, 3월 3일) 이는 수개월간의 시위와 코로나19 발병의 추가 타격을 받은 후 불경기 홍콩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재난기본소득제’의 취지와 가장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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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 코로나19 극복 추가경정예산안’을 브리핑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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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현재 추경 확보에 급급한 정부도 재난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 내 종합 TFT(태스크포스팀)를 만들어 긴급생활비 지원과 함께 중장기적인 ‘재난기본소득제’ 나아가 ‘보편적 기본소득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존의 ‘사후약방문’식 경제진흥대책이 아니라 고통을 받는 ‘경계선에 있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입장에서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 또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계선에 있는 국민’들의 코로나19사태와 관련된 일련의 ‘사회적 고통 및 피해, 사회적 비용’에 대한 심도있는 실태조사가 있어야 한다.
셋째, 이번 코로나19사태의 경우 지금까지 다른 어떤 재난에 비해 감염성이 빠르고, 광범위하며,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재난의 피해자나 취약층에 대한 신속한 지원대책이 절실하다. 확진자 격리자와 그 가족들, 실업자·취업준비 청년·홀로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층, 비정규직 노동자·자영업자 등 재난의 여파로 수입이나 매출액의 급감 피해를 입는 계층에 대해 어느 소득분위까지 일괄 지급할 것인지 기준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소상공인이나 대기업의 경우 별도의 경기회복 정책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정부도 4일 ‘저소득층 4인가구에 월 35만 원 상품권 4개월분을 제공하는 등 저소득층 등에 재난기본소득 개념의 상품권을 지급해 생계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소비 여력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의 추경예산 11조7000억 원을 마련했다. 그 중 2조 원 가량을 소비쿠폰, 특별돌봄 쿠폰 등 상품권 지급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위소득 기준 하위 40%~50%로 전국 137만7000가구, 189만 명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한국일보, 3월 4일) 정부는 이번 조치에 ‘재난기본소득’ 취지가 일부 반영됐다고 한다.
그러나 재난기본소득의 취지가 반영돼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을 고려하더라도 중위소득 기준의 대상범위를 대폭 늘리고, 상품권 지급만이 아니라 현금 지급도 이뤄져야 한다. 상품권만으로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긴급생활지원비’를 넘어 ‘재난기본소득’의 취지에 가까울 것이다. 아울러 미국과 이탈리아 등 외국의 자자체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광역 또는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단기간의 재난기본소득 실험을 시범적으로 실시해 ‘재난기본소득’의 최적모델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재난기본소득을 비롯한 기본소득제의 가장 큰 문제는 재원확보와 국민의 공감대 및 사회적 합의를 얻는 일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따로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재난기본소득제 공론화를 통해 진정 국가와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공동체가 함께 생각하는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재난기본소득의 핵심은 재난 가운데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해 우리사회가 국가공동체로서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원하고, 이러한 과정에 부의 불평등, 사회적 불안을 해소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너나없이, 여야없이 감염병의 재난 대응을 통해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